원우는 미신을 믿었다. 남들이 보기엔 가장 믿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었지만, 알고 보면 마음이 약했다. 태어나길 기가 약하게 태어난 탓도 있겠다. 어쨌든 원우는 유약하고, 깨지기 쉬운 마음을 가졌고, 그래서 이것저것 기대고 싶은 게 많았다. 어떤 때는 종교를 믿어야 했고 다른 상황에서는 토속 신앙을 믿어야 했고 때로는 귀신이나 소문을 찾아 헤맸다. 무엇이 원우를 그렇게 불안하게 만들었는지는 그 자신도 몰랐다. 

원우의 이유 모를 불안감은 때때로 원우를 집어 삼켰다. 원우는 그런 순간들을 어둠에 먹히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끝이 없는 어둠의 바다 속에 내던져지는 거였다. 그래서 원우는 항상 명확하고 확실한 것에 매달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답이 있는 것. 미신이나 어떠한 믿음의 필요 없이 오롯이 원우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만이 원우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부모의 만류를 뚫고 연습생이 되기로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원우는 자신이 언젠가는 데뷔할 수 있을 거라는 걸 알았다. 그 어떤 근거도 없는 확신이었지만, 원우는 분명 이 길의 끝에서 자신이 원하는 걸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죽어라 무언가에 매달리는 것, 남들의 우울에 함께 잠식되지 않는 것,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것.이런 건 원우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모두가 지루하다고 하는 반복되는 일상이 도리어 원우에게는 안정감을 주었다.

 

무엇이 놓여 있을지 모르는 미래보다는 비록 절망일지라도 확실한 절망의 세계가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게 원우가 늘 자신의 평범한 인생에서 도망치거나 혀를 깨물어 죽어버리고 싶은 이유였다. 평범함은 확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결국 그 어느 날,원우가 자신의 부모와, 자신의 불안한 인생에서 도망치고 싶다고, 아주 처절하게 빌었을 때, 공교롭게도 캐스팅 매니저가 원우에게 명함을 건네 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디션을 봤고, 합격했고,연습생이 되었다. 내 힘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미래야. 그러니 도망치지 않아도 돼. 원우는 촌스러운 초록색 벽을 눈으로 훑으며 요동치는 심장을 잠재웠다.

원우가 처음 연습실에 발을 들였을 때 그를 맞이한 사람은 순영이었다. 동갑내기였고, 서글서글한 성격의 순영은 원우에게 할 일을 설명해주었고, 회사를 한 바퀴 돌면서 원우가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을 알려 주었다. 원우는 순영의 말을 조용히 경청하면서 간간히 고개를 끄덕였다. 순영은 성격이 좋았지만, 원우가 별로 궁금하지 않았던 사실들까지 얘기했다. 그래서 순영이 다시 연습실로 돌아와 다른 연습생들에게 갔을 때 원우는 내심 안도했다. 원우는 필요한 것보다 많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버거웠으니까.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연습생들과 함께 레슨을 받고, 휩쓸려서 안무 연습을 하는 건 크게 힘들지 않았다. 신체적으로는 물론 온 몸이 아프다고 아우성을 쳤지만, 적어도 원우는 정신적으로는 편안했다. 그리고 그 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다른 연습생들과 불필요한 말을 섞지도 않고, 외딴 섬처럼 지내는 순간이 더 나았다.

 

“저기, 원우 형?”

“…어?”

 

한 박자 느리게 대답한 원우는 고개를 살짝 들어서 제 앞의 사람을 마주했다.

 

“김민규…?”

“제 이름 기억하시네요, 저랑 한 마디도 안 하셔서 모르시는 줄 알았어요.”

 

민규가 해사하게 웃으며 구석에 웅크려 있던 원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원우는 얼떨결에 그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눈높이가 얼추 맞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가까운 거리에 원우는 뒷걸음질을 치다 거울에 등을 부딪쳤다. 조심해요. 민규가 덧니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원우는 그게 좀 어색해서 아무 말없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민규가 붙임성이 좋고 살갑다는 건 익히 들어서, 그리고 직접 봐서 알고는 있었다. 다만 원우는 자신과 민규의 접점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근데, 나한테 무슨 할 말 있어?”

“…네? 에이, 무슨 그런 비즈니스적인 멘트를...! 저 그렇게 정 없는 애 아니에요-“

 

그건 알아. 원우는 그 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그리고, 같이 연습하는 사이잖아요. 나중에 같은 팀으로 데뷔할 수도 있는데, 아무 이유 없이 말 걸어볼 수 있지 않나...?”

 

마지막에 고개를 옆으로 살짝 갸웃거리는 게, 예전에 창원에 있을 때 옆집에서 키우던 자그마한 강아지 같았다. 덩치는 저만큼 큰데,꼭 그 안에 아주 귀엽고 작은 영혼이 들어있는 것 마냥. 원우는 민규의 말을 천천히 곱씹으며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대가 없는 호의, 이유 없는 웃음. 넌덜머리가 나는 가면의 웃음. 원우는 서울로 상경해서 저런 웃음을 너무 많이 봤다. 기가 약한 원우에게 기생하고 싶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짓던 표정이었다. 그런데, 민규의 웃음은 보고 있으면 있을수록 이유 없이 경계가 풀렸다. 그 웃음은 단 한 조각의 거짓도 담지 않은 순수한 웃음이었다. 원우는 문득 입 안이 텁텁해졌다. 

 

“…그러니까, 제 말은요, 잘…지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랑 형이요.”

 

원우는 대답 없이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아주 느린 대답이었지만, 민규는 참을성 있게 원우의 대답을 기다렸고, 떨어진 긍정의 대답에 아이처럼 좋아했다.

원우는 별로,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

 

 

 

 

 

 

“형, 월말평가 때 조 누구랑 같이 해요?”

“나 한솔이랑 지훈이…너는?”

“아, 나는 승철이 형이랑 이석민이요.”

 

조 괜찮네. 원우는 장난스럽게 민규의 어깨를 쳤다. 민규는 과장되게 몸을 구부렸지만, 원우의 주먹엔 전혀 아플 만큼의 힘이 없다는 건 원우도, 민규도 알고 있었다. 원우는 민규를 아주 살짝 올려다보았다. 민규는 어느새 원우보다 눈높이가 조금 더 높아져 있었다.원우는 그 변화를 보면서 시간의 흐름을 체감했다. 민규가 처음 제게 말을 걸었던 날 이후로 새로운 연습생들이, 원래 있던 연습생들만큼 들어왔다. 반복되는 매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바쁘고 빠르게 지나가서, 정신을 차리고 보면 한 달씩 시간이 훌쩍 지나 있기도 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원우는 많이 변했다. 스스로도 가끔은 놀랄 만한 변화였다. 타인과의 불필요한 대화, 접촉, 관계에 회의적이었던 원우가 이제는 먼저 연습생 동기들에게 치댈 수도 있을 정도가 되었다. 원우는 그 변화를 애매하다고 정의했고, 민규는 긍정적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민규로부터 말미암은 원우의 외적 성격의 변화도 원우의 안쪽 깊은 곳까지 바꿔 놓지는 못했다. 원우의 본능은 뼛속 깊이 각인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원우는 여전히 이유 모를 불안에 시달렸고, 미신을 믿었고, 기가 약했다. 그 불안의 방향이 남들과 달라서 티가 나지 않을 뿐이었다. 원우는 언젠가 자신이 어둠에 집어 먹힐 거라는 걸 믿었다. 완벽한 절망의 세계는 변하지 않았고, 원우는 여전히 확실한 것을 좇아 살았다. 

 

“..이번 평가 끝나면 데뷔 조…거의 확정된다던데…얘기 들었어요?”

“응.”

 

나, 데뷔할 수 있겠죠 형? 응. 민규는 자주 자신의 데뷔에 대해 불안해하곤 했다. 그 불안을 남들처럼 숨기지도 않고 만나는 사람마다 드러내며 발을 동동거렸다. 그 큰 몸집으로서는 상당히 귀엽게 징징거릴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남들에게 그 불안을 전염시키지도 않고, 그렇다고 짜증나게 하지도 않고 자신의 불안함을 토로할 수 있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원우는 민규가 제 어깨에 고개를 비비적거리며 푸념을 늘어놓을 때면 가만히 손을 올려서 민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늘 그저 덤덤하게 응, 대답하고 말았다. 민규는 데뷔할 거였으니까. 제 막연한 미래를 확신한 것처럼, 원우는 민규도 반드시 데뷔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 형태의 미래를 상상해본 적도, 상상할 수도 없었다. 김민규는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모두에게 사랑받아야 할 아이…였으니까. 원우는 민규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어색했다. 남에게 그만큼의 강렬한 감정을 느낀 게 처음이었다. 타인에게 그만큼 편해져 본 것도, 휘둘려 본 것도, 그냥 친해진 것조차. 언제부터 민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원우는 복잡한 생각을 한쪽으로 밀어버리고는 카메라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동생들에게 장난스럽게 달려들었다.

 

 

 

 

 

 

“원우야.”

“네.”

 

고개를 반쯤 숙인 원우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 데뷔하고 싶다며.”

“네, 그렇습니다.”

“근데 이번에 왜 이렇게 나를 실망시키지?”

“죄송합니다.”

 

원우는 입술을 달싹이다 다시 입을 닫았다. 월말평가에서 다른 연습생들이 혼나는 모습을 자주 봐왔고, 그래서 자신도 언젠가는 이런 쓴 소리를 들을 것임을 알았다. 원우는 제 몫을 잘 해냈음에도 불구하고 제 옆에서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한솔과 지훈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고개를 살짝 들어올렸다.

넌, 왜. 저를 보면서 저보다 더 속상한 표정을 하고 있는 민규에게 원우의 시선이 닿았다. 고개를 들어올린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원우는 눈가가 일렁이고, 입술을 조금 내민 민규의 시무룩한 표정을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그러지를 못했다. 정작 원우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저를 향한 걱정이 가득 담긴 민규의 표정을 보니까 속이 울렁거렸다. 컨디션 관리를 제대로 못한 탓에 오늘 아침에도 겨우 일어나서 연습실에 출석했으니, 당연히 좋지 않은 무대를 보였을 것이고, 뒤따르는 혹평은 그저 그 결과일 뿐인데. 나는 다시 잘할 수 있는데, 민규야. 너는 왜 아프게 나를 보고 있어. 

 

“이제 곧 데뷔 조 확정되는 건 알지?”

“네.”

“좀 더 분발하자, 어?”

 

그러겠습니다. 원우는 구십 도로 허리를 숙인 뒤에 한솔과 지훈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로 들어갔다. 아픈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자꾸 머리가 핑핑 돌았다. 데뷔. 그 말이 갑자기 왜 이렇게 원우의 명치께를 콱 누르는지 모를 일이었다. 지금까지 내내 생각해온 건데. 할 수…있을 텐데.

민규는 저번보다 더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안정적으로 평가를 끝냈다. 모든 트레이너 쌤들에게 칭찬도 받았다. 민규는 기쁜 표정을 숨기려고 했지만 원우는 민규의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고 눈빛이 반짝거리는 걸 다 보았다. 그리고 희미하게 웃었다. 웃다가 눈이 마주치고, 민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원우는 민규의 표정을 따라 인상을 찌푸렸다. 민규는 한달음에 원우에게로 달려와서 원우의 옆에 쭈그려 앉아서 원우의 이마를 짚어 보았다. 아침부터 몸을 제대로 못 가누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마가 불덩이 같았다. 원우는 시원하지도, 뜨겁지도 않은 민규의 온도를 느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원래 내가 차갑고 네가 뜨거워야 되는데, 그치. 그 생각을 민규도 하고 있는 듯, 속상한 눈빛이 원우의 얼굴을 쓸었다.

 

열이 몰린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다. 자꾸 깜빡, 깜빡 암전되는 시야에 원우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여기 있는 모두가 아픈 몸을 이끌고도 아픈 내색을 않았다. 그건 자주 아프지는 않지만 가끔 감기에 걸리는 민규도 그랬고, 연습생들을 통솔하는 역할을 맡아서 더 티낼 수 없는 승철도 그랬고, 워낙 폐 끼치는 걸 싫어하는 지훈도 그랬고… 그런데 원우는 아픈 게 겉으로 티가 났다. 꾹꾹 눌러서 참아내도 누군가는 원우가 아프다는 걸, 원우가 아플 때 알아차렸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아픈 게 지나가고 나서야 들키거나 어설프게 숨긴 약봉지 때문에 들키거나 하는데 원우는 비틀거리기만 해도 들켜서 연습을 못했다. 연습을 못하게 하는 일등공신은 당연히… 김민규였다. 너 이거 과잉보호야. 지나가던 순영이, 승철이,석민이 말해도 민규는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원우를 챙기려 들었다. 원우와 너무 다른 온도의 사람이었다. 아무리 끓어올라도 미지근한 온도에서 멈추는 저와 달리 언제나 뜨겁고, 따뜻해서 원우는 가끔씩 도망치고 싶었다. 예전에 일상에서 도망쳤던 것처럼. 예측할 수 없는 무언가. 그렇게 단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민규는 그런 존재였다. 원우가 눈을 세게 깜빡였다.

 

“...많이 아파?”

 

민규가 울 것 같은 얼굴로 원우의 볼을 살살 쓸었다. 민규의 손이 축축해졌다. 원우는 그제서야 자기가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눈을 세게 깜빡여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원우는 눈물로 얼룩진 시야 속에서 민규의 얼굴을 찾았다.

 

“민규야…”

“응.”

“데뷔할 수 있겠지…?”

 

원우의 물음에 민규의 얼굴이 잠시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원우의 입에서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늘 불안해하던 민규를, 단 한 마디로 진정시켜주던 사람이었다. 그런 원우가, 눈 앞에서 울면서 질문하고 있었다. 민규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원우와 함께하지 않은 미래를 그려본 적이 없다. 항상 원우에게 칭얼거리면서도, 민규 또한 원우와 같이 데뷔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난 형이랑 떨어져 있는 걸 상상할 수가 없어. 민규는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눈 앞에서 울고 있는 원우를 어떻게든 달래주어야 했다. 생각보다 먼저 몸이 움직였다. 원우의 어깨를 감싸서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한참을 그렇게 원우의 등을 토닥이던 민규가 이내 원우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감싸서 떼어냈다. 눈가가 발갛게 짓무른 걸 보고 있자니 속상함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떻게 소리 한 번 안 내고 눈물만 줄줄 흘려. 민규는 그 안쓰러운 얼굴을 다시 한 번 옷 소매로 두드려 닦아주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응. 형이 아니면 누가 해요. 형이 아니고서는 우리가 없는데.”

 

지금까지 늘 원우가 제게 해주었던 것처럼, 그냥 덤덤하게. 그런데 온 마음을 다해서 말했다. 민규는 그랬다. 원우에게는 진심으로 부딪치지 않는 방법을 모르겠다. 언제부터 네가 없는 미래가 말도 안 되는 게 되어버렸는데. 민규는 원우의 불안을 차라리 제게로 옮겨오고 싶어졌다. 가장 덤덤해 보이면서,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아주 차갑고 큰 불안을 떠안고 있는 원우라는 걸 알고 있어서. 처음 인사를 건넸을 때부터 나와는 반대인 그 모습에 끌리지 않았겠냐고.민규는 답이 없는 것들, 무식하게 꼬여버린 일들을 단칼에 해결해내는 것에 능했다. 답이 없는 문제에 연연해 하지도 않았으며, 외부에 나의 믿음을 맡겨버리지 않고 자신을 믿었다. 그래서 자꾸 도망가는 원우에게 원우 스스로의 믿음을 넘겨주고 싶었다. 아니면 원우의 확신을 다 뒤집고 망쳐버려서, 원우가 속박된 불안으로부터 원우를 끊어내고 싶었다. 줄곧 그래왔다.

민규는 원우의 앞머리를 살살 정리하며, 울음을 그치려 숨을 고르는 원우에게 지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원우가 굳이 밖에서 자신의 불안을 걸어놓을 공간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민규 자신에게 기댔으면 한다. 이미 오래 전에 민규가 받아들인 그 감정을 원우도 삼킬 수만 있다면.

 

“형.”

“…응.”

“나 겁 많은 거 알죠.”

“그렇지…”

“그럴 때 형이 다 괜찮다고 해줘서 나 여기까지 왔는데. 앞으로도 형이 나 달래줘야 내가 여기 있지.”

 

그러니까 얼른 뚝 그치고 나랑 약속해요. …무슨 약속. 전원우가 김민규 안 떠날 거라는 약속. 그래야 우리 같이 백년만년 아이돌 할 거 아니야. 나는 형 없음 못할 것 같으니까, 형이 또 나한테 져줘야죠. 나는 한 번도 형이 없는 이 공간을 그려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답이 정해진 거잖아. 그렇잖아, 전원우.

원우는 민규의 마지막 말에 눈을 깜빡이다, 이내 크게 떴다. 민규가 말하는 미래가, 원우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미래와 같아서, 원우는 심장이 쿵 떨어졌다.

 

“형 똑똑하니까 내가 무슨 의미로 말한 건지 다 이해했죠?”

“…”

“우리는 같이 데뷔할 거고, 그렇게 같이 지낼 건데… 난 형을 내 동료로서도 못 잃을 거고… 형이 지금 생각하는 그 이유로도 못 잃어.”

 

날 좋아하잖아요. 입으로 꺼내지 않은, 숨겨진 민규의 말이 원우의 귓가에 울렸다. 내가 형을 좋아한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잖아.민규의 눈에서 읽히는 말들이 원우를 짓눌렀다. 답을 찾을 수 없어서 지금껏 외면해온 모든 것을 민규가 흔들어 버렸다.

 

“나는 형이 형을 사랑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어려우면 그냥 다 던져 버리고 나랑 먼저 해요. 그래서 형 안에 그 감정이 생기게.”

 

원우가 본능적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눈 앞에 푸른 바다가 일렁이는 것 같았다. 끝이 보이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확실한 절망의 세계에 사는 원우가 건널 수 있는 선이 아니었다.그런데도 원우는 선뜻 아니라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민규야, 민규야… 나는…”

 

너를...

사랑하잖아. 민규의 눈빛이 말한다. 

 

답을 찾으려 하지 마.

어떻게?

…나를 믿어.

 

민규는 원우의 눈가를 약하게 문지르며 그렇게 말했다. 나를 믿으라고. 원우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민규를 바라봤다. 한참을 머뭇거렸다. 원우의 눈빛이 힘을 잃을 때마다 민규가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원우는 한 뼘 정도 위에서 저를 내려다보는 민규와 눈을 맞추다, 천천히 손을 뻗어서 민규의 어깨를 쥐었다. 어쩌면 처음에 네가 네 방식으로 살갑게 다가왔을 때 이미 정해졌던 걸지도 몰라. 선을 넘는 네 행동이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네가 남들과 다른 의미가 되었다는 뜻이었는데. 민규야, 나는… 너를…

민규는 원우가 이끄는 그대로 고개를 숙여서 원우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원우야, 사랑에는 답이 없어.

그냥 너랑 나, 그리고 우리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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