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nd THEME PARK/글

[승쿠비] 회전목마

Monthly MW 2021. 1. 14. 00:08

 

 

 

요 며칠간 서늘한 바람이 줄어든다 싶더니 정말 봄이 되어버린 모양이었다. 창문 밖으로도 여실히 보이는 쨍쨍한 햇빛에 걸쳐 입으려던 카디건을 침대 위로 던져버렸다가 문득 스치는 생각에 다시 손 안에 잡아 올렸다. 빠진 건 없는지 한 번 더 둘러보고는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크로스백 안에 챙겨 넣고 방을 나섰다. 겨울이 다 지나갔는데도 집에는 왠지 모를 한기가 가득하다. 보일러를 좀 켜둘 걸 그랬나... 쌩뚱맞은 말을 느리게 뱉었다가 벌써 5분이나 지나버린 분침을 확인하고 나서야 급하게 신발을 구겨 신고는 아무도 없는 집 안에다가 대고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꾸벅- 허리까지 숙여 인사를 했다. 당연하게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것이 익숙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굳이 자전거를 탈 필요도 없었다. 그저 손잡이를 잡고 몇 걸음 끌고 가다보면 너의 집 앞이었다. 평소보다 늦게 나선 탓인지 너는 애꿎은 땅바닥에 신발코를 톡톡 부비고 있었다. 게다가 반팔에 하복 셔츠를 걸친 나와는 정반대의 차림새인 춘추복까지 제대로 갖춰 입은 모양새였다. 별로 더운 날씨도 아니었지만 그다지 추운 날씨도 아니었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나와는 달리 추위를 많이 타는 너였고, 봄이 되고 가을에 다다를 때까지 하복을 입는 나와는 달리 매미들이 극성이는 한여름이 아니면 대부분 춘추복을 입거나 하복 위에는 꼭 카디건을 걸쳐 입고 다니는 너였다. 그마저도 너의 마른 팔을 제대로 감싸주지 못하는 넉넉한 사이즈의 카디건 덕분인지 때때로 너는 내가 몸에 열이 많다는 이유로 내 품 안에 불쑥 안겨오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했다. 비포장도로 위로 끌려오는 자전거 소리에 너는 슬며시 고개를 들었고 눈이 마주쳤다. 나는 좀 더 걸음을 빨리했고, 너 역시도 망부석처럼 굳어있던 그 자리에서 조금 벗어나 나를 보며 한 발짝 발을 내딛었다. 내가 너의 앞에 섰을 때, 너를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내 허리를 감싸 안고 내 가슴팍에 고개를 묻었다. 혹여나 자전거가 쓰러져버릴까 손잡이를 놓지 못해 나는 너를 안아주지 못했지만 너는 그런 건 신경쓰지 않은 채 내 허리를 감싸 안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당연하게도 너와 나에게는, 그것이 익숙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학교는 걸어가면 30분, 자전거로는 15분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덥고 추운 날에는 자전거보다는 좀 더 빨리 도착하는 버스를 탈만도 했지만 너는 비가 올 때 우산을 쓰고, 눈이 올 때 목도리를 둘러매는 것보다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것을 극심히도 귀찮아했었다. 내가 건네준 카디건을 걸쳐 입고 자연스럽게 뒷자리에 앉아 내 허리춤을 꼭 붙잡고 얼른 내가 출발하기만을 기다리는 너의 굼뜬 표정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내 네 얼굴만 보고 있었더라면 해가 다 지고 어두컴컴한 밤이 되어서까지 난 그 자리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괜찮더라도 너는 단 한 번도 지각을 해서도, 결석을 해서도 안 되는 아이였다. 너는 원체 머리가 똑똑하고 성적도 상위권을 유지하는, 한 학교에 한두명씩은 있는 모든 과목 선생님들의 총애를 받는 그런 존재이기도 했지만 너는 너 스스로가 너를 그렇게 만들고 있었고 또 그것을 지켜나가고 있었다. 물론 그것들의 최종목표는 네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였겠지만.
 
 
 
 
 
 
 
 
 
학교에 도착하기까지 너는 내 너른 등에 이마와 코를 부벼대길 반복했다. 내게는 너무나도 참기 힘든 행동이었지만 너에게는 그저 몰려오는 잠을 뿌리치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네가 내 허리를 감싸안은 손에 힘을 줘올 때, 나는 손잡이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고. 네가 쌀쌀한 아침바람에 어깨를 떨며 내게 몸을 더 부딪혀올 때, 나는 달리는 속도를 조금 더 낮출 뿐이었다.
 
 
 
 
 
 
 
 
 
“ 원우야. ”
 
“ …. ”
 
“ 원우야…. ”
 
“ 으으응…. ”
 
 
 
 
 
 
 
 
 
눈 뜨자, 다 왔어.
여전히 내 등 위에 얼굴을 가득 묻은 채로 잠투정을 부리는 너의 손등을 간질이자 그제야 너는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간지러운 대답을 해왔고, 나는 안장에서 내려와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게 지탱하며 네게 손을 뻗는다. 그럼 너는 내 오른팔을 한 품에 끌어안으며 내게 기대 오듯이 뒷자리에서 내려왔고 나는 그런 너를 내 품에 안듯이 받쳐주었다. 너는 유독 잠이 많았다. 특히나 아침잠이 많아서 어릴 때는 유치원 버스를 놓치는 것이 다반사였고, 출근과 함께 우리를 데려다주시는 어머니의 차 뒷자석에 앉아 가는 내내 너는 내 허벅지를 베고 곤히 잠자는 것이 너와 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일이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되어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나는 부모님에게서 자전거를 선물 받았고, 너는 선물의 주인인 나보다 더 관심을 보이며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것저것 눌러보고 만져보기도 했었다.
 
 
 
 
 
 
 
 
 
“ 타보고 싶어? ”
 
“ 으응? 아니, 아니야…. ”
 
“ 타 봐, 태워줄게. ”
 
 
 
 
 
 
 
 
 
나는 내 물음에 움찔대며 고개를 젓는 너의 얇은 손목을 잡고 뒷자리로 이끌었다. 말로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너의 몸은 순순히 나를 따라왔고, 나는 불안하게 눈동자를 굴리는 너의 두 팔 사이에 손을 넣고 가볍게 들어 뒷자리에 안착시켰다. 내가 자전거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확인하는 동안 너는 어색하게 띄워진 두 발을 동동거리며 내 뒤통수를 착실하게 좇았고, 내가 손잡이에 걸린 브레이크를 풀고 안장을 확인하고 나서야 너는 틀어진 몸을 돌려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내가 안장 위에 엉덩이를 대기도 전에 너는 허공에 뜬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내 허리에 손을 감을 준비를 하는 듯 했고,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너는 마치 엄마와 떨어지기 싫은 아이처럼 내 몸을 으스러질 듯 감싸 안았다. 나는 그런 너의 손등을 살살 쓰다듬어주며 페달에 발을 올리고 출발을 준비했다.
 
 
 
 
 
 
 
 
 
자전거를 타며 봄바람을 맞는 내내 너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그저 내 옷자락만 쥐고 있었지만, 등 뒤로도 여실하게 느껴지는 움찔거리던 너의 볼 덕분에 나는 네가 환하게 웃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전거는 마치 산책을 나온 강아지마냥의 속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괜한 마음에 속도를 올리라 치면 너는 내 옷자락이 팽팽해질 만큼의 힘을 주었고, 나 역시도 바람에 살랑거리는 너의 머리카락이 내 목덜미를 스쳐가는 게 여간 묘한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 크지도 않은 동네를 세 바퀴나 돌고 나서야 따뜻하던 바람이 점차 쌀쌀해지는 것을 느꼈고, 너는 아쉬운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내게 시선을 두었지만 나는 그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는 입고 있던 후드티를 벗어 너에게 입혀주었다. 속살이 다 내비칠 정도로 얇은 긴팔티 하나만 달랑 입고 있던 너는 목을 쑥 빼고 내가 입혀주는 대로 옷을 입었고, 반팔티만 남은 나를 보며 춥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준 뒤 너의 손을 잡고 집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날 이후로 일주일간 잔기침을 동반한 가벼운 감기몸살에 걸려 밖에 나가 운동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한다거나 심지어는 너를 만나러 가는 것도 할 수 없었지만 너와 아침저녁으로 통화를 하며 알레르기니 뭐니 생전 잘 알지도 못하는 병의 핑계를 댄 덕에 다행히도 넌, 눈치 채지 못한 듯 했었다.
 
 
 
 
 
 
 
 
 
같은 고등학교를 3년 내내 다니면서 매일 아침마다 널 데리러 가고, 또 데려다 주는 것이 내가 유일하게 너를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혹여나 내가 너의 공부에 방해라도 될까봐 신이 우리를 갈라놓은 것인지 입학하고 졸업을 할 때까지 우리는 항상 끝과 끝의 반을 배정 받았었다. 그 놈의 망할 고등학교는 왜 점심식사도 반별로 나눠서 하는지 나는 3년 내내, 그리고 졸업한지 9년이 지난 지금도 그것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다.
 
 
 
 
 
 
 
 
 
고등학교 땐, 난 항상 운동장을 달렸고 넌 교실에만 덩그러니 있었을 것이다. 넌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창가자리를 선호하지도 않는지라 밖에서부터 널 훔쳐보는 일도 할 수 없었고 난 그저 야자시간이 끝날 때까지 새하얀 공책에 너의 이름만 수천 번, 수만 번 적기를 반복했을 뿐이었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내 머릿속은 항상 너였던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너의 말간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는 순간에도,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순간에도, 자전거를 끌고 널 데리러 가는 시간에도, 너의 반 앞까지 널 데려다주고 내 반까지 돌아가는 시간에도, 지루한 수업시간과 왁자지껄한 쉬는 시간에도,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그저 빈 공책에 네 이름만 수북하게 새기는 야자시간에도, 너의 반 앞에서 가방을 정리하는 널 기다리는 순간에도, 너의 집 앞까지 널 데려다주고 배웅하는 그 순간에도, 집으로 돌아와 씻고 옷을 갈아입는 순간에도,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 순간에도.
 
 
 
 
 
 
 
 
 
너와 함께 있든지 없든지 간에.
 
 
 
 
 
 
 
 
 
난 항상 너였다.
 
 
 
 
 
 
 
 
 
 
 
 
 
 
보고싶어, 전원우.
 
 
 
 
 
 
 
 
 
[ 지난 금요일 밤 11시 경, 도로를 역주행하던 화물차 한 대가 마주 오던 승용차와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사고 충격으로 화물차에 부딪힌 승용차가 튕겨나가면서 전복되었고, 이 사고로 인해 승용차 운전자였던 24살 전 모 씨는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경찰은 화물차 운전자였던 한 씨가 음주운전을 하다가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해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처럼 음주운전으로 인한 역주행 사고가… ]
 
 
 
 
 
 
 
 
 
 
 
 
 
 
바닥에 널브러진 술병들과 온갖 쓰레기들을 밀쳐내고 신발장 근처에 버려지듯 던져져있던 코트를 들어 대충 껴입고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굳이 계산하자면 5개월만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촉감이 손 안에 들어오자 발 끝에서부터 소름이 돋았다. 눈을 똑바로 뜨지 않는다면 헛구역질을 하며 정신을 잃을 것도 같았다. 네가 내 옆자리를 비워두는 것도 반년이 다 되어 가는데, 나는 멀쩡히 숨을 쉬고 살아있음에 죄책감을 느꼈다. 현관문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발을 내딛자 거짓말처럼 네가 쓰던 향수 냄새가 풍겨왔다. 원체 그런 것에 관심이 없던 너는 역시나 호기심에 내 향수를 한 번 뿌려봤다가 맘에 들었는지 그 후로부터 내 향수를 야금야금 쓰기 시작했다. 그 땐, 변태같다는 소리를 듣고 잔소리를 들을까봐 하지 못했던 말이지만 같은 향수는 쓰는데도 유독 네 몸에선 더 좋은 냄새가 났다. 정말 변태아저씨같이 얘기하자면 흥분제 같기도 했다.
 
 
 
 
 
 
 
 
 
까마득한 지하주차장에는 네 향을 따라 내려온 내 거친 숨소리가 돌고 돌았다. 아마 너는 죽어서도 나를 잊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유혹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난 너라는 흥분제를 끝까지 참아내지 못했고 같은 자리에서 널 마주할 수 있기를 원했다. 고요하던 주차장에 요란한 엔진소리가 울렸고, 나는 두 손과 두 발에 있는 힘껏 힘을 주고는 네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끝은 보이지 않았다. 단지, 내 시작은 너였고 너일 뿐이었다.
 
 
 
 
 
 
 
 
 
아득해지는 밤하늘 사이에서 결국 난 너를 마주했다.
 
 
 
 
 
 
 
 
 
넌 여전히 예뻤고,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