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든] 지금껏 그랬듯, 앞으로도 계속
서울 한구석, 문을 닫은 놀이공원은 늘 적막했다. 한때는 사람이 꽤 많았다더라, 하는 이야기는 어른들이 과거를 추억할 때나 어렴풋이 들어본 것이 다였다. 지금은 가끔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오는 주말에만 반짝 생기가 돌았고, 평소에는 인기척조차 없을 정도로 휑한 곳이었다. 몇몇은 보기에 흉물스럽다며 놀이공원의 처리를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흘러가는 말이었다. 산 중턱에 있는 좁은 놀이공원을 굳이 건드릴 사람은 없을 것이 뻔했고, 가끔이나마 오는 사람들에게 입장료의 명목으로 얼마씩 받는 돈은 그나마도 목소리를 없애는 데에 일조했다. 원우가 놀이공원에서 하는 일은 바로 그 일이었다. 오는 사람들을 불러 세워 돈을 받는 것. 사람들은 대체로 협조적이었으며, 원체 작은 곳이라 뒤에서 몰래 들어온다 하더라도 찾기에는 어렵지 않았다. 무료한 일이었다. 고장을 낼 것도 없으니 사람들에게 신경을 쓸 이유도 없었고, 청소 따위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귀찮은 일을 떠맡은 원우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면서도 젊은 애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 따위의 오지랖을 부리곤 했다. 그냥, 심심하잖아요. 할 일도 딱히 없고. 자세한 이유가 없는 것처럼 무심하게 답하기는 했지만, 원우가 이 폐쇄된 곳에 갖는 의미는 제법 큰 편이었다.
어렸을 때 한 번쯤은 상상한 적이 있다. 놀이공원이 문을 닫을 때도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친절한 목소리는 일정한 시간이 되면 늘 나갈 것을 안내했지만, 빛나는 놀이기구들은 멈추려는 기미 없이 늘 반짝거림을 뽐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원우가 물었다. 놀이기구는 꼭 쉬지 않는 것 같다고, 그럼 언제 기계는 쉬냐는 등의 순수한 질문이었다. 늘 원우 같은 애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거야, 하는 다정한 대답에 기분이 좋았던 것 같기도 했다. 동네의 작은 놀이공원이 슬슬 제 크기로 보이기 시작한 것과 원우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은 거의 비슷한 때였다. 사람들이 점점 줄기 시작한 것도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동네는 유일한 흥밋거리가 사라지는 일을 걱정해야 했고, 결국 문을 닫아야겠다는 결정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놀이기구가 멈추던 날, 원우는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같이 가자는 권유에 친구들은 지겹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혼자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소문이 난 건지, 좁은 놀이공원은 생각보다 사람이 꽤 차 있었다. 폐장 시간까지도 마지막을 추억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멈추는 소리와 함께 모든 불빛이 꺼지자 사람들은 아쉬운 마음으로 연신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원우는 생각했다. 마지막이란 생각보다 쉬운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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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우가 이곳을 다시 찾은 이유는 하나였다.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가장 어울리는 곳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여기라면 마지막을 정리하는 데에 어울릴 것 같다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은 마지막을 생각하며 보냈다. 어느 곳이 가장 어울릴까, 하는 다소 음습한 생각은 이곳저곳에 매달려 있었다. 하루는 회전목마, 또 하루는 범퍼카에 제 몸을 옮겨가며 죽는 상상을 하곤 했다. 원우가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사람들은 빈 곳을 꾸준히 찾았다. 촬영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사진을 찍으러 오는 개인은 그것보다 많은 편이었다. 원우가 그들에게 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입장료를 받고, 가끔 묻는 질문에 답을 하는 정도였다. 보통은 자기들끼리 떠들기에 바빴고, 그런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은 원우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사람들은 활기가 없는 이 곳에서 생기발랄한 목소리를 내곤 했고, 그런 목소리가 가신 후의 적막은 늘 외로움을 자아냈다. 이런 식이면 아마 생각보다 자신의 마지막이 빨라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고, 원우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날도 특별한 사람은 없었다. 손님은 오전 중에 한 명이 있었고, 약간 흐린 오후는 잠들기에 적합한 정도였다. 이런 날이면 죽어도 아무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원우의 앞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 사람인가. 싶은 마음에 내다본 밖에는 카메라를 든 키가 큰 남자가 서 있었다. 자신도 작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조금 높여야 하는 눈높이는 생경한 기분을 들게 했다.
“여기, 사진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아, 입장료 일단 내시고….”
첫인상과는 조금 다른, 밝은 목소리가 묻는 말에 괜스레 말을 더듬었다. 무언가 질문을 받는 일은 꽤 오래 전에 했던 일이었고, 머릿속에서는 어디가 예뻤더라, 따위의 생각을 하느라 바빴다. 남자는 돈을 쥔 채로 부산스러운 원우를 기다렸다. 한참을 고민하던 원우는 회전목마 쪽을 가리켰다. 저기가 예뻐요, 우리나라에 저런 회전목마는 여기 하나라서…. 이런저런 설명을 늘어놓는 원우의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들은 남자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여전히 밝은 목소리 톤을 유지한 채였다.
“근데 날이 흐려서, 예쁘게 안 나올 수도 있어요.”
“그럼 나중에 또 오죠, 뭐.”
회전목마는 원우가 지켜보기 좋은 곳에 있었다. 딱히 둘 곳이 없던 시선은 이내 남자의 카메라와 비슷한 곳을 향했고, 그렇게 한참 동안 셔터 소리만 들려왔다. 날씨는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고, 남자의 손도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그 일련의 행동들은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원우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남자는 표정이 다양했고, 찍는 행동 자체를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진이 찍히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지자, 남자는 카메라를 정리하고 원우가 있는 쪽을 살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남자도 따라 고개를 숙이곤 놀이공원을 나섰다. 예의를 굉장히 차리는 편이네, 하는 쓸모도 없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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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남자는 제법 자주 찾아왔다. 늘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비슷한 위치에서 서서 한참이나 뷰파인더를 들여다보곤 했다. 만족할 만큼 사진을 찍은 날과 아닌 날은 명확하게 구분이 되었다. 남자는 표정을 잘 숨기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먼저 회전목마에서 사진을 찍는 날에는 다른 곳을 둘러보기도 했지만, 카메라는 항상 회전목마만을 향했다. 가끔은 이유가 궁금했지만, 굳이 물어보기엔 무언가 쑥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주제 넘는 일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을까, 말까 하는 고민은 결국 쑥스러움을 눌렀다.
“저기요.”
“네?”
“그, 왜 회전목마만 찍으세요?”
네? 늘상 그랬듯, 돈을 내밀고 몸을 돌려 나가려던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아, 아니에요. 머쓱한 마음에 괜스레 부산스럽게 굴자 남자는 덧니를 드러내며 밝게 웃었다. 아, 덧니가 있네. 새로운 발견을 곱씹던 때에 남자의 답이 와 닿았다. 그냥, 저한테 추천해 주셨잖아요. 그래서 찍어요. 놀란 눈과 웃음을 머금은 눈이 마주쳤다. 가벼운 눈인사만이 전부이던 사이에, 무언가가 생긴 기분이었다.
남자의 이름은 민규라고 했다. 통성명 정도는 할 때가 되지 않았냐는 남자의 물음에 제 이름도 얼결에 소개한 원우가 괜스레 고개를 숙였다. 원우, 라고 발음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낯설면서도 신기했다. 아마도 더 이상 자신의 이름을 소개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남자의 존재는 원우의 예상을 빗겨가게 하는 일이 잦았다. 자기는 스물한 살이라고 소개한 민규는 나이를 시작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았다. 사진은 취미로 찍는다는 것, 전공은 국문학이라는 것…. 별로 영양가 있는 정보는 아니었지만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길게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틀, 혹은 사흘 간격으로 오던 민규가 매일같이 출석 도장을 찍으면서부터는 민규가 할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이 원우의 습관이 되었다. 사람이 없을 때에도 조금씩 활기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원우가 민규에게 더 이상 입장료를 받지 않기 시작한 때와 비슷한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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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흐리더니 이내 오후에는 제법 거센 비가 왔다. 오늘은 사람이 없겠네, 싶은 마음은 여유를 불러 왔다. 오전 내내 흐려 문을 아예 닫아 둘까, 하다가도 귀찮음이 앞서 문은 열여둔 채였다. 아마 민규도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 기간이어서 못 올 수도 있어요, 했던 것이 일주일 전쯤이었다. 다다음 주에 올게요, 하는 목소리가 기억이 났다. 새삼 연락처도 하나 교환하지 않았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조금은 아쉬운 마음에 연락 하나 없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연락처를 다 정리해 울리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괜히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던 때였다. 빗소리를 뚫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비에 누구지, 하는 마음에 급하게 문을 연 곳에는 민규가 서 있었다. 우산을 받쳐 든 모습에서 평소와는 다른 느낌을 풍겼다. 들어와, 하는 말에도 민규는 제자리를 지켰다. 왜, 무슨 일 있어? 원우의 목소리에 민규는 되물었다.
“내가 왜 온 것 같아요?”
“글세, 뭐…. 무슨 일 있어서 온 거 아니야?”
“보고 싶어서요.”
“뭐?”
“보고 싶어서 왔어요, 오늘은.”
낯선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한테 이런 낯간지러운 얘기를 들었던 것이 언제였더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답을 해야 하나, 하는 망설임은 민규에게는 다른 의미로 닿은 것 같았다. 저만 형 보고 싶었어요? 형은, 내 생각 같은 거 하나도 안 했어요? 형은 늘 그래요, 자기 얘기는 하나도 안 하고. 억울함이 잔뜩 뒤섞인 목소리는 제법 아프게 원우를 찔렀다. 그런 게 아니야, 하는 변명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럼 뭔데요. 단단히 각오한 듯한 목소리는 원우에게 무슨 대답이든 들어내고야 말겠다는 태세였다.
“나는 네가 아니면 지금 여기에 없었을 지도 몰라.”
“그만큼, 네가 소중해, 나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말이, 민규의 앞에서 흘러나왔다. 별다른 말없이 이어질 말을 기다리는 민규 앞에서 원우는 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끊어진 채로 나오는 말을 듣는 민규의 표정은 조금씩 변했다. 화, 안쓰러움, 그리고 차츰 부드러워지는 표정 앞에서 원우는 제 이야기를 모두 토해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여기에 왔다는 것, 민규를 처음 봤을 때 달갑지 않았던 것도 자신과 다른 밝음 때문이었다고. 제 감정을 모두 쏟아낸 원우가 민규의 품을 파고들었다. 제 등을 토닥이는 손길은, 처음의 그 느낌대로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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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망울은 잔뜩 내린 비를 맞고 피어날 준비를 했다. 민규와 원우도, 그렇게 조금씩 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