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란] 척살 ! 빌렌도르프
네 청춘은 존나 곰삭았어. 전원우가 말한다. 21세기에 출산 후유증으로 죽는 게 말이나 되냐고. 모친은 본디 병약했다. 첫 출산은 그럭저럭 버텨냈으나 사내애 하나를 또 내보내고 나자 말 그대로 시들어갔다. 친형은 아무런 죄의식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죄의식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갔느냐 하면 아니었다. 나는 놀랍게도 잘 살았다. 가끔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지마는 잘 살았다. 그런데 전원우가 말한다. 네 청춘은 존나 곰삭았어. 네 인생도 약간 시궁창 같은 경향이 있지. 묻는다. 섹스하고 싶은 사람이랑 사랑하는 사람이 다르면 어떡해요? 전원우는 별 고민을 하지 않는다. 섹스는 섹스대로 하고 사랑은 사랑대로 해야지. 그럼 섹스도 그 사람이랑 하고 싶고 사랑도 그 사람이랑 하고 싶으면요? 뭘 어떡해, 걔랑 평생 살 비벼야지. 우리 엄마는 왜 나를 낳았을까요? 나는 누운 전원우를 본다. 나와 전원우의 위치 관계란 자각한 순간부터 늘 꼬여 있었다. 처음에는 부정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차차 무감해졌다. 익숙해진다는 건 어떤 걸까. 지친다는 것. 길든다는 것. 무디다는 것. 전원우의 이름에 깃든 두 개의 원을 그린다. 그것은 일종의 눈동자다. 면밀하고 정결하게 나를 응망한다. 뒤이어 전원우는 입을 연다. 나 만나게 하려고 낳으셨나 봐. 내가 형을요? 그런가 봐, 네가 나를. 나는 헛웃음 친다. 팔을 뻗자 전원우에 닿는다. 꽉 잡아서 끌어당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전원우가 영영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우스워서 재차 웃는다. 전원우는 따라 웃지 않는다.
사실 내 청춘의 태반이 같잖은 콩트다.
전원우는 여자를 만나며 얻을 부담이 싫어서 남자를 만난다고 했다. 그건 퀴어 배제적 발언 아닌가요, 말했는데 전원우는 듣는 척도 않았다. 근데 사실이야. 어쩔 수 없어. 전원우의 로직은 이렇다. 여자와 오랜 시간 교제하면 친족이 자연스레 결혼을 권유한다. 결혼 다음은 당연히 출산이다. 나는 죽어도 애 안 키워. 왜요? 와글와글 시끄러워. 시끄러운 거 싫어해요? 싫지. 나도 싫어요? 아직은 괜찮아, 얼굴이 잘생겨서. 나는 맥없이 수긍한다. 잘생긴 얼굴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 그러나 인사에 응할 이는 살아 있지 않다. 나 또한 임신과 출산의 사이클에 회의적이다. 애당초 그런 일을 겪어야 할 당사자가 아닌 이상 무어라 의사를 표명할 자격이 없으나. 나도 전원우도 여성이 아니다. 나는 곧잘 어머니 단 한 사람으로 집단 전체를 대변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전원우에게 내 꿈의 서사를 털어놓는다. 어머니의 싸구려 향수 냄새, 굽이치는 머리카락……. 전원우는 판정한다. 너는 얽매인 거야. 무엇에? 너희 엄마의 환영에. 그녀가 베아트리체라도 되는 것처럼. 전원우는 내가 불행하다고 하지만 나는 불행하지 않다. 그것은 전원우의 오만이요 편견이다.
"형을 만났으니까 다 괜찮아요. 정말 행복해요."
"지랄하네."
조소하는 전원우. 의혹한다. 형은 왜 비정한 말들만 골라서 내뱉고 꼭 웃음을 덧붙이는지. 예쁜 얼굴로 무마하려는 작전의 일부인가. 나는 전원우와 같이 산다. 서로를 얽맬 수 없는 그런 관계. 전원우는 결혼과 자녀를 속박이라 표현한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할 수밖에 없는 거다. 방 한편에는 전원우가 충동구매한 화이트보드가 붙어 있다. 뜻밖에도 그 물건은 대체로 요긴하게 쓰인다. 나는 겉면에 오늘의 메뉴를 적어넣고 전원우는 보드마커로 찍찍 선을 그어 대거나 집안일 당번을 제 맘대로 정해 버린다. 전원우 설거지하기. 김민규 쓰레기 버리기. 단조로운 투두리스트에 전원우가 급기야 멜로디를 붙인다. 김민규우, 쓰레기이, 버리기이, 랄랄랄라. 나는 푸념한다. 형. 악센트를 그렇게 주지 마요. 전원우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김민규 쓰레기. 한 번 끊고. 버리기. 반복되는 어절들에 기반을 두어 결심한다. 나도 전원우를 설거지하고 말겠어.
사실 전원우는 내가 없으면 안 된다. 무심결에 판단했다. 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건 전원우 본인이다. 전원우는 이태원의 골목길에서 나를 대뜸 붙잡고 물었다. 혹시 남자와 잘 수 있으신가요? 나는 5초간 패닉 상태에 빠져 '네?' 하고 되물었는데, 그것을 대답으로 받아들인 전원우가 팔짱을 꼈다. 연애합시다. 더는 여자를 만나지 않겠노라 결심한 전원우가 우연히 퀴어를 마주한 순간. 나를 만난 지 삼 개월쯤 되었을 무렵에서야 전원우는 속내를 까발렸다. 결혼하고 애 둘 낳고 반듯하게 잘 살라는 소리 듣기 싫어서 부모님께 남자 만난다고 커밍아웃하려고. 흡사 대체재가 된 기분이라 울먹거렸다. 그럼 저는 형한테 그냥 여자 대용이에요? 전원우는 그 표정으로 나를 들여다봤다. 따지고 보면 전원우는 그런 표정밖에 짓지 않는다. 가끔 웃고 놀라고 허탈해하기도 하지만 주된 정서는 늘.
"아니. 너는 여자 대용이 아니지."
결국에는 전원우의 눈동자가.
"나는 지금 내가 여자를 만나고 있다거나 남자를 만나고 있다고 생각 안 해."
이어지는 사자성어. 진퇴무로. 속수무책.
"김민규를 만나고 있는 거지."
나는 그 후 내내 전원우를 열렬히 사랑하게 됐다. 전원우가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나뿐이니. 사랑까지야 아닐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간에 전원우는 나를 만나야 하고 나는 전원우를 만나야 한다. 상호 간에 들어맞는 것이 있으므로 기이한 연애를 지속한다. 남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도 나는 모른다. 전원우는 최선을 다하여 비주류를 지향하기에 나라도 장단을 맞춰 주어야겠다는 의미 불명의 사명감만이 겉돈다.
어느 날 초인종이 눌린다. 전원우는 잡동사니를 사러 나갔다. 인형 뽑기에 열 올리는 중일 수도 있다. 나는 누워서 시끄러운 에코를 듣다가, 아, 우리 집 초인종 소리가 이랬구나, 상념에 잠긴다. 음조는 끊기지 않는다. 문득 깨닫는다. 누군가 초인종을 눌러서 저런 경박한 소리가 울린 거겠네. 나는 얼른 일어나 현관으로 나간다. 마침내 연 문 앞에는. 웬 여자. 심지어 배가 도도록히 부른 임산부가.
갈색으로 물을 들인 머리카락, 귀염성 있는 카디건과 원피스, 서른이 채 되지 않았을. 만삭은 아니다. 그래도 실루엣이 명백하다. 2차 패닉. 설마 전원우의 숨겨둔 부인? 나는 데룩데룩 눈을 굴린다. 여자는 당당하게 묻는다. 전원우 집 맞나요? 추측에 확신이 실리기 시작한다. 전원우도 벌써 이십대 후반이니까 애 하나 만들었어도 이상할 게 없기는 한데. 위장이 요동치며 스멀스멀 무엇인가 올라오려 하고 있다.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구토 유발 쓰리 콤보 외의 것으로 취급하지 못하는 전원우와는 다르게 제왕절개 동영상을 풀컬러로 시청해도 내 비위는 멀쩡한 편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울 것 같다. 실연의 심정을 감지한다.
"전원우 여기 살지 않나요?"
"맞는데요……."
"그런데 누구세요?"
"그쪽은 누구신데요……."
"원우 누나요."
여자가 의도치 않게 나를 구제한다. 나는 딸꾹질을 한다. 여자의 눈총을 받으며 그녀를 집 안으로 들인다. 전원우의 누나라면 내가 퍽 잘 보여야 할 대상이다. 전원우는 상견례에 대한 생각이 조금도 없는 듯했으나. 나는 멋대로 계획하고 멋대로 판단한다. 나의 그런 점을 좋아하는 한편 싫어하는 전원우는 이제 사랑에 좀 익숙해져야 한다. 여자에게 커피를 내 준다. 여자는 종이컵에 담긴 커피믹스를 고풍스레 홀짝인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가족 일 때문에요. 완곡한 거부 의사. 외부인에게 가정사를 시시콜콜히 알리고 싶지 않다는. 어차어피에 전원우는 이미 내게 상당수의 참을 드러냈다. 나는 입을 다문 채 승자의 기분에 한껏 젖는다. 때마침 현관문이 덜컥 열리고 전원우가 들어온다. 주인공 되시겠다. 전원우라는 유기체 때문에 건너건너 아는 사이가 된 나와 여자가 동시에 전원우를 돌아본다. 부른 배에 시선을 흘끗, 주고서. 전원우는 눈을 감는다.
"왜 왔어."
전원우는 지나치게 예민하며 상상력이 풍부한 것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거나. 단순히 임산부를 보는 것만으로도 몇 달 뒤의 시퀀스가 눈앞에 차르륵 펼쳐진다. 나는 공감하려 애쓴다. 무수한 시도를 거쳐 얻어낸 결과물은 전무. 여자가 말한다. 원우야, 나 애 낳아. 누가 보면 전원우 애인 줄 알겠다, 나는 비평적으로 사유한다. 전원우는 대꾸한다. 어쩌라고. 조카 생기면 한 번 보러 와. 미안한데 나는 신생아공포증이 있어. 몇 살부터 몇 살까지? 0세부터 9세까지. 나이가 한 자릿수인 애들은 취급 안 해. 여자가 그만 종이컵을 내려놓는다. 가장자리에 립스틱 자국이 곱다랗게 묻었다.
"그러니?"
"그래, 누나."
"아버지가 너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염병."
"같이 사는 저분과는 어떤 관계?"
"애인."
"아하."
기다란 손가락이 나를 가리켰다가 도로 멀어져간다. 고찰한다. 전원우가 나를 애인이라 표현했다. 애인이라면 사랑 애에 사람 인. 사랑하는 사람. 전원우가 나를 사랑하나? 21세기 최적화 오픈마인드를 지닌 여자는 마냥 미소한다. 애인분이 잘생기셨네.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여 뵌다.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어째 연극적인 다이얼로그. 익숙한 단어가 뇌벽을 밸밸 긁는다. 콩트다. 이 불공평한 촌극은 내가 전원우와 함께하는 한 평생 끝나지 않는다. 전원우 말마따나 내가 현재 필사적으로 유지하는 스탠스는 전원우의 애인이고, 내 청춘은 곰삭았다. 가 볼게. 여자는 왔을 때처럼 산뜻한 태도로 떠나려 한다. 나는 좋은 인상을 위해 일어서기까지 한다. 실은 상식에 가까운 행동이다. 안녕히 가세요. 여자의 웃음은 우아하다. 그래요. 모쪼록 잘 지내시고요, 동생 애인 씨. 내 주관에 따르면 전원우는 제 누나에게 적대적이다.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다. 하여간 절대로 호의적이지는 않다. 나는 내 가족에 대하여. 글쎄. 끈적끈적한 육친의 정 같은 건 없다만. 며칠 전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집에는 언제 올 거냐? 대답을 뭉갰다. 꽃잎처럼. 눈발처럼. 에둘러 말하는 것을 허락받음으로써 아버지는 나를 배려한다.
전원우는 손위 누이가 돌아간 후 곧장 드러눕는다. 허리를 제대로 세우고 서 있는 시간보다는 바닥과 일체화된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나는 전원우를 연구하고 싶다. 하지만 이것은 흥미가 아니라 사랑임을 안다. 전원우의 정신적 알레르기. 나는 그 유별난 호불호마저 사랑하는 탓에. 전원우가 팔을 축 뻗쳐 내 가슴팍을 비비적댄다. 몇 초간 참다가 일깨운다. 그냥 형 거 만져요. 전원우는 순순히 제 가슴 위에 손바닥을 얹고 몇 차례 문지르더니 관둔다. 잡히는 게 없어. 김 샜다는 표정이다. 어디 가요? 전원우가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내묻는다. 샤워하려고. 전원우는 옷가지를 챙겨 나와 욕실 앞에 선다. 말간 눈이 나를 파먹는다.
"옷 벗고 따라 들어와."
뒷모습은 문 너머로 사라진다. 스패너로 얻어맞으면 이런 느낌일까. 나는 무릎을 세웠다가 이내 벌떡 일어난다. 옷은 들어가서 벗을 거다.
내 아버지는 산부인과 의사고 그의 아내는 출산 후유증으로 죽었다. 그때 아버지가 의료용 마스크를 끼고 있었던 건 아니다. 아버지는 여느 남편처럼 아비처럼 가슴 졸이며 곁을 지키기만 했다. 아버지가 한 일이라고는 응시뿐인데도 아버지는 자책에 잠식당한다. 모든 허물을 자신에게 돌린다. 친형은 차라리 그편이 낫다고 했다. 염오의 화살을 외부로 돌리게 되면 아버지는 복수심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깡통으로 변한다. 그래서 합당하지는 않을지언정, 그편이 낫다고. 아버지는 출산하는 여인들로부터 죽은 아내를 본다. 나 또한 그녀들로부터 죽은 어미를 본다. 아버지는 내게 무엇을 강요하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 수증기에 절어 느른해진 전원우는 평소보다 무디다. 포비아만 아니라면 한없이 느긋한 인물이다. 내게 기대 텔레비전을 시청한다. 연예인들이 롤러코스터에서 짜장면을 먹는다. 어으. 나는 외마디 소리를 낸다.
"저거 다 치우려면 힘들 텐데……."
"돈 쓰면 안 될 일이 없지."
전원우는 사후 처리에 관하여 관심이 없다. 이야기한다. 배고프다. 밥 차려 줄까요? 아니, 짜장면 시켜 먹자. 저런 방송을 보면 외려 식욕이 떨어지지 않나, 의문하지만 전원우가 짜장면이 먹고 싶다면 그냥 그런 거다. 나는 짜장면을 주문한다. 브라운관 속의 롤러코스터는 계속 작동한다. 상승, 갑작스러운 하강에, 원을 그리기까지 하고. 광학적 상이 전파에 실려 수신 장치에 재현된다. 집중하다 보면 어질증이 닥친다. 세계는 말짱한데 나만 돈다. 전원우의 옆얼굴에 잔상이 남아 나는 허탈하다. 민규야. 내가 줄곧 생각해 봤는데. 전원우가 문득 지껄인다. 오늘 날씨를 언급하는 듯 태평한 어조. 징조가 뒤통수를 후려친다. 아니에요, 말하지 마요. 너랑 내가 처음 만났을 때 말이야. 말하지 말라니까…….
"내가 네 어머니를 닮았나?"
"그런 게."
"닮았지?"
"아닌데."
내가 네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에 그때 나를 미친놈 취급하지도 않고 신고하지도 않은 거지? 초면에 남자와 섹스할 수 있냐고 물었더랬다. 전원우는 어느새 상념을 기정사실화한다. 액자에 갇힌 어머니는 머리가 검고 살결이 희다. 눈매가 가늘고 입술이 봉긋하다. 언제까지고 어머니는 그 안에 수납된다. 아버지의 정성 덕에 정기적으로 교체되는 사진, 언뜻 보기에 그녀는 황금 사과를 삼키고 불로불사를 취한 노르웨이의 여신. 봄에는 꽃무늬 원피스를, 여름에는 얇은 직물로 짜인 셔츠를, 가을에는 캐시미어 스웨터를, 겨울에는 흰 눈 아래 코트를 입은 채 웃는다. 집안 사정을 전혀 모르는 이가 집을 방문한다면 분명 아버지에게 딸이 한 명 있는 줄 알 것이다. 살아 있는 딸. 나는 본가에서 묵을 때마다 근원 모를 거북함을 느낀다. 안방 벽에는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 아버지, 어머니, 형. 나의 부재는 어머니의 생존을 상징한다. 따라서 나는 없다. 없어야 마땅하다. 죄악감에 시달린 적 한 번 없노라 자부했지마는.
"그렇다면 너는 전원우 자체를 사랑하는 게 아니지."
나는 울 수 없어서 웃는다. 전원우에게는 누나 둘과 형 둘과 조카 사점 오 명이 있다. 전원우는 여태 제 존재 의의를 모른다. 나마저 다시금 전원우를 부정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면 나는 죽고 싶어질 것이다. 결국 우리의 역사 전부는 탯줄로 얽혀 있으므로. 그다음 말이 쉬이 나오지 않는다. 인과가 뒤틀린다. 뒤틀렸다. 언제부터? 처음부터. 전원우가 채널을 돌린다. 짜장면 언제 오지? 일상적인 말투가 여전하다. 나는 사실 짬뽕이 더 좋아, 맵잖아. 하지만 해산물이 싫어. 그러니까 짬뽕을 좋아하지만 먹지는 못해. 기구하지?
"원우 형."
"네 청춘은 존나 곰삭았어."
"사랑해요."
전원우는 믿지 않는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다. 한편으로는 나를 아주 사랑한다는 것처럼 내 어깨에 손을 올린다. 전원우. 내키는 대로 여신상을 부술 인간. 구태여 이유를 꼽자면 우상 숭배가 싫어서. 불필요할 정도로 탄탄한 신념은 그에게 플러스가 되지도, 마이너스가 되지도 않는다. 무엇도 그 페이스를 해치지는 못해서. 나는 전원우를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한다. 전원우는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았던 까닭에 나를 사랑한다. 사랑을 잘 모르면서 나를 자꾸 단정 짓다니 참으로 부당하다. 물론 그 부당함마저 어여삐 바라본다. 전원우의 이론에 따르면 나는 한평생 베아트리체를 읊는 단테이며 자신은 한낱 그림자. 틀리다. 전원우를 설득해야 한다. 내 사랑은 진실하다고. 초인종이 끼어든다. 부자연스레 삽입된 전자음에 힘입어 전원우를, 바라본다. 색채감이 풍부하며 비선형적이다. 전원우는 이윽고 환상이 된다. 사랑해요. 속삭인다. 전원우가 웃으며 떨어져 나간다. 주섬주섬 뭔가를 든다. 어디 가요? 묻지만, 데자뷔. 전원우의 뒷모습은 익숙하다. 평이한 어투에도. 배달 왔잖아. 들려오는 말에 나는 고개를 숙인다.
"짜장면 먹자."
이 역시 진부한 멜로드라마의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