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거스러미가 니트에 걸려 삐죽 실이 빠져나왔다. 원우가 멍하니 보고 있자 민규가 다가와 니트를 대충 늘려 불뚝 튀어 나온 부분을 수습했다. 민규는 여전히 멍하게 서 있는 원우를 소파에 앉히고 거실의 텔레비전 테이블의 두 번째 서랍을 열었다. 거울과 같이 반사되는 철제 손톱깎이를 원우를 향해 내민 민규가 이내 한숨을 쉬었다. 심하게 멍하다 싶더니 원우가 졸고 있었다. 민규는 슬쩍 웃으며 원우의 곁에 앉았다. 나른한 고양이처럼 늘어진 원우의 손을 끌어 올렸다. 그 바람에 원우가 푸스스, 건조한 눈을 떴다. 왜? 입모양만으로 이야기하는 민규의 무릎으로 원우가 쓰러지듯 누웠다.
 
 
“야, 너 손.”
 
 
원우는 팔을 이리저리로 휘젓다가 민규의 손 위로 안착했다. 손거스러미가 툭, 튀어 나와 있었다. 민규가 손톱깎이를 바짝 들여 잘라냈다.
 
 
 
 
 
 
                        도로시의 은구두
             Dorothy‘s Magic Silver Shoes
 
 
 
 
 
 
 
영화감상반. 이름만 들어도 따분할 것 같은 동아리를 민규가 고른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전원우. 세상에 첫 눈에 반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민규는 원우를 통해서 체감했다. 첫 눈에 반하는 것은 수많은 묘사만큼 강렬하지도 반짝이도 않았다. 그저 내가 저 사람을 좋아하겠구나 하는 직감만이 손 사이로 흐를 뿐이었다. 그 결은 매우 거칠고 퉁명스러워 과연 이것을 사랑이라 불러도 좋은가 싶었다. 손 사이로 흐르는 일이 많아질수록 그 결은 아름다워졌고 부드러워졌다. 사랑은 처음부터 세상을 아름답게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사이에 둥글어지고 반짝이게 변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굳이 단어로 말하자면 사랑은 마모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모되다가 결국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 민규는 영원한 사랑을 믿지 않는 쪽에 속했다. 물론 얼마 전까지는 첫눈에 반한다는 사실에도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긴 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에 확신은 없었다.
 
실컷 영화를 볼 수 있을 줄 알고 신청한 동아리는 생각보다 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았다. 새롭게 부임한 선생님은 의욕이 과다해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동아리 운영을 하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늙은 한문 선생이 영화 하나를 틀어주면 아이들은 제각각 하고 싶은 일을 했다. 대부분은 취약한 과목의 문제집을 풀고는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감상반은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 동아리였다. 전원우가 영화감상반에 들어가고 싶다는 말 한마디를 했을 뿐이었는데 그 말을 이루어 주기 위해 김민규가 행한 노력은 아주 칭찬할만한 것이었다. 일례로 학교 앞 인형 뽑기 기계에 마의 인형이 하나 있었는데 그걸 가지고 싶다는 놈 때문에 무려 10만원이란 거금을 써서 겨우 그 인형을 구해다 주었다. 물론 인형을 뽑지는 못했다. 10만원이나 쓴 고딩을 불쌍히 여긴 주인아저씨가 학생하고 불러 뭘 가지고 싶냐고 물어 자존심을 내던져버리고 저거요,하고 얻은 것이었다. 어쨌거나 김민규는 원우와 함께 지금 여기 영화감상반 동아리에 앉아 있었다. 물론 인생은 뜻대로, 원하는 바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라 늙은 선생의 정년퇴임으로 새파랗게 어린 한문 선생이 왔는데 불행히도 과목 뿐 아니라 동아리까지도 맡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처음에야 학생들은 환호했다. 솔직히 늙은 한문선생의 영화 취향은 영 맞지 않았으므로 영화감상반에서 영화를 보는 이는 미래에 영화감독이 꿈인 현수뿐이었다. 젊은 선생으로 바뀌었을 때 학생들의 예상은 요즘 유행하는 히어로물 같은 트렌디한 영화를 드디어 볼 수 있게 될 거라 기대했었다. 물론 실망은 금세 찾아왔다. 그가 제일 처음 고른 영화는 히치콕의 작품이었고 영화를 보고 감상과 토론을 할 거라고 미리 못을 박았다. 전원우는 물론 그런 일들을 지루해했다. 괜히 왔어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김민규는 정말로 눈물이 날 뻔했다. 원우와 함께 이 동아리에 들어오기 위해서 노력했던 일들을 생각하니 그럴만도 했다. 물론 상황이 이리 된 것은 원우의 탓은 아니었지만 속상한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민규는 괜히 원우를 보지 않고 영화를 감상하는 척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원우는 별다른 말이 없다가 이내 민규의 어깨에 기대 잠이 들고 말았다. 사실상 원우는 예전과 지금 그다지 달라질 게 없었다. 늙은 한문 선생이든, 젊은 한문 선생이든, 어떤 영화가 상영된다고 하더라도 전원우의 선택은 하나였을 것이다. 잠, 이 짧고 간결한 단어의 행위가 그것이었다. 민규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이 시조를 생각하면서 문득 전원우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이 시조 되게 야한 거 같아. 이방원은 정몽주를 사랑한 게 아니었을까. 그럼 게이였나?”
 
 
말도 안 되는 소리. 김민규는 처음으로 전원우의 말을 딱 잘라 부인했다. 민규의 반응에 전원우는 또 그런가 하고 쉽게 수긍하고 지나가 버렸다. 평소와 다른 것은 민규의 반응뿐이었는데 어쩌면 ’게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일지도 몰랐다. 자신의 어깨에 기댄 전원우를 보며 민규는 한숨을 내쉬었다.
 
신입 선생의 과도한 열정은 안타깝게도 쉬이 꺾였다. 하지만 다시 불타오르는 것도 쉬웠다. 첫영화의 토론이 실패로 끝나자 선생은 새로운 작전으로 들어갔다. 일명 당근작전. 가장 토론을 잘한 사람에게 상품을 준다는 사탕발림이었다. 상품은 놀이공원 자유이용권이었다. 전원우는 조용히 가고 싶다라고 중얼거렸다. 조용했지만 민규가 들을 충분히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소리였으므로 의도적인 것임을 민규는 금방 알아차렸다. 오즈의 마법사. 두 번째 영화는 그것이었다. 민규는 하나의 장면도, 하나의 대사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민규는 충분히 노력했고 노력은 달콤한 결실을 선물로 주었다. 놀이공원 자유이용원 2장을 손에 넣은 민규가 씨익- 웃으며 바라보자 전원우는 나른한 얼굴로 옅게 웃었다. 소리 나지 않는 박수를 두어 번 쳐주기도 했다. 민규는 꼭 칭찬받은 어린아이처럼 어깨를 으쓱했다.
 
 
 
 
 
 
전원우는 대부분 약속시간에 늦었다. 오늘도 당연히 그럴 줄 알고 있던 민규의 눈에 약속시간보다 십 분이나 먼저 도착한 원우가 보였다. 혹시 환영인가 싶어 눈을 질끈 감았다 떴지만 확실히 원우가 맞았다. 웬일로 손을 들어 흔들기까지 했다. 좀 더 가까이 다가오자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있는 원우가 보였다. 순간 민규는 자신이 나라라도 구한 영웅처럼 느껴졌다. 전원우가 웃는 일은 세상을 구하는 일에 맞먹는 것이었다. 적어도 민규에게는.
 
김민규가 전원우를 안 이래로 전원우는 가장 활발히,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의외로 겁이 없었고, 의외로 웃음이 헤펐다. 바이킹은 세 번이나 탔고 롤러코스터는 다섯 번이나 탔다. 하얗게 질린 민규의 얼굴을 보고 폭소하기도 하고 풍선을 들고 걷는 어린아이를 보고는 큼지막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애 같기는.”
 
 
민규는 저도 모르게 웃으며 혼잣말을 했다. 전원우가 그걸 들은 시점에서 혼잣말이 성립이 되지 않았지만. 벤치에 앉은 채로 원우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민규야.”
“어.”
“나 고아다?”
 
 
툭, 갑작스럽게 떨어진 사실에 민규는 당황스러운 눈을 감출 방법을 찾지 못하고 눈을 꽉 감았다. 원우의 목소리는 여전히 민규의 귓가에 머물렀다. 원우는 모든 기억이 있을 때 버려졌다고 했다. 살면서 한번도 놀이공원을 가보지 못했다고 했다. 다른 애들은 버리는 날에는 놀이공원도 가고, 옷도 좋은 거 입혀주고, 맛있는 것도 사줬다는데 원우의 아버지는 그런 것도 없었다고 했다. 보육원 앞에서 너를 키워줄 수 없으니 여기서 살라고, 그렇게 말하며 고작 열 살된 아들이 스스로 보육원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서 사라졌다고 했다. 원우는 그 날 너무 많이 울어서 그 이후로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때부터 내 꿈이었어. 놀이공원은.”
 
 
민규가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하자 원우는 웃음을 팍 터트렸다.
 
 
“그렇다고 너무 불쌍하게는 보지 마. 보육원에서도 몇 번이나 갈 기회가 있었고, 중학교 때는 소풍으로 갈 수도 있었어.”
“근데 왜.”
“그냥, 첫 놀이공원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오고 싶었어. 다들 사랑하는 부모님들이랑 오니까. 나도 처음은 좋아하는 사람이랑.”
 
 
민규는 말을 끝내지 않은 원우를 꽉 끌어안았다. 동정은 사양인데. 원우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민규는 대꾸를 하지 않고 원우를 안은 팔에 좀 더 힘을 주었다.
 
 
 
 
 
갑작스레 인파가 모여들더니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퍼레이드의 시작이었다. 오늘 퍼레이드의 주제는 우연하게도 오즈의 마법사였다. 은색 구두를 신은 도로시를 필두로 허수아비, 사자, 양철로봇 등 익숙한 얼굴들이 줄지어 행진을 하고 있었다. 서쪽마녀를 찾으러 가는 것처럼. 원우가 벌떡 일어나 퍼레이드의 행렬을 향해 달려갔다. 민규가 별 수 없다는 듯이 따라갔지만 사실은 그런 원우가 조금 귀엽기도 했다. 인파가 많아서 아무리 키가 큰 민규와 원우라도 잘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 원우는 답지 않게 까치발을 세워 퍼레이드를 구경하려고 애를 썼다. 옆의 아이는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무등을 태워 주고 있었다. 잘 보이지 않아 시무룩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변화했다. 민규가 원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퍼레이드를 구경하느라 바쁜 얼굴이 홱 돌아섰다. 의문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원우를 향해 민규는 옆의 작은 아이를 가리켰다. 원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민규는 고집을 부렸다. 결국 원우가 고집싸움에서 져버렸다. 불쑥 커다란 사내 하나가 솟아오르자 주변의 사람들과 맞은 편 사람들은 물론, 퍼레이드를 이끄는 사람들의 시선도 원우에게 와 닿았다.
 
 
“아씨, 쪽팔려.”
 
 
원우가 고개를 푹 숙였다. 위로 올려다보던 민규와 눈이 마주치자 이게 더 쪽팔린다며 시선을 다시 행진행렬로 돌렸다. 귀 끝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민규야.”
“응?”
“도로시가 은색 구두를 신었어.”
“뭐?”
“영화에서는 빨간 구두였는데.”
“원작은 은색이야.”
 
 
그렇구나.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퍼레이드가 중간에 멈추자 음악 역시 멈췄다. 도로시가 자신의 은색 구두의 뒤축을 세 번 소리 나게 치자 경쾌한 음악이 다시 시작됐다. 가지고 싶다. 원우의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뭐가?
 
 
“도로시의 은색구두.”
“왜?”
“내가 제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줄 테니까.”
 
 
원우는 자신이 말하고도 어이가 없는지 푸스스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민규는 원우가 원하는 곳이 궁금했으나 선뜻 물어볼 수 없었다. 원우의 세계로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원우에게로 난 길은 아직도 깜깜하고 선명하지 않았다. 그래도 걸어들어 갈 수 밖에 없었다. 어두운 길을 환하게 밝혀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자신의 마음들이 빚어낸 것들로 그 길을 화려하게 걷고 싶었다. 원우에게로 가는 길로 화려한 행진을, 퍼레이드를 하고 싶었다. 길을 걷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용기라는 신발을 신는 것. 민규는 자신만의 은구두를 신을 필요가 있었다.
 
 
“내가 돼줄게.”
“뭘?”
“도로시의 은구두. 아니, 전원우의 은구두. 네가 원하는 곳으로 언제든지 데려다 줄게.”
 
 
꽃마차도 필요하면 말해. 민규의 고백의 끝은 싱거운 농담이었다. 전원우는 대답이 없었다. 퍼레이드의 행렬이 이미 멀어졌다. 원우는 조용히 자신을 내려달라 말했다. 왜 아직 보이는데. 민규는 퍼레이드의 뒷행렬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당장 너한테 키스하고 싶으니까 내려줘.”
 
 
 
 
 
 
 
 

 
 
 
 
 
 
 
 
원우는 성인이 되자마자 보육원에서 나와야했고 민규는 대학을 오면서 독립 아닌 독립을 했다. 원우가 제일 원하는 곳을 묻는 민규에게 원우는 네 옆이라고 대답을 했다. 민규는 원우의 손거스러미를 잘라내면서 지난 일들을 떠올렸다. 여전히 자신은 원우의 은구두였다.
 
원우가 제 발 뒤꿈치끼리 세 번 두드렸다. 민규는 소리 나게 웃었다.
 
 
“어디 가고 싶은데?”
“니 입술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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