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규야, 우리가 20대 때 같이 놀이공원을 또 올 수 있을까?”

 
“당연하지. 20대가 뭐야. 형이 원할 때 아무 때나 올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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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형. 언제 나와? 형 기다리다가 죽겠어.”
 
‘야, 나 엘리베이터 앞이야. 기다려 금방 내려갈게. 귀찮게 또 왔냐.’
 
“내가 귀찮아?”
 
‘아니, 네가 귀찮다는 게 아니라.’
 
 
 
 
‘네가 나 기다리는 게 귀찮지 않나 해서.’
 
 
 
 
7월의 중반. 날씨는 원우의 생각보다 더웠다. 둘은 멀지 않지만 그래도 서로 다른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있었다. 중학생 3학년 원우, 중학생 2학년 민규. 원우 보다 한 살 어린 민규였지만 민규는 배려심이 넘쳤다. 고작 한 살 많은 원우가 심심해 할 거라는 이유를 앞세워 아침에 조금 일찍 나와 원우의 집에서 기다리고 같이 등교했다. 민규의 친구들, 원우의 친구들 모두 차라리 사귀라며 혀를 끌끌 찰 정도였다. 사귀는데, 바보들. 민규와 원우는 친구들을 비웃으며 둘만의 비밀 아닌 비밀 연애를 즐기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 민규는 배려심이 넘쳤다. 눈이 오던 비가 오던 항상 원우의 집 앞에서 원우를 기다렸다. 일 년이 넘도록 사귀었지만 민규는 이렇게 더운 날이면 항상 가디건을 팔에 걸고 나왔다. 날씨가 더워 학교, 학원에서 트는 에어컨 바람에 원우가 춥지 않을까,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처음 만난 순간부터 일 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원우를 대신해 가디건을 들고 왔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도 민규에 팔에 걸쳐있지 않았고 원우는 자꾸만 민규의 팔에 시선을 두었다.
 
 
 
 
 
“근데 여기 학교 가는 길 아니잖아? 왜 여기로 가?”
 
“형, 오늘은 학교 말고 놀이공원 가자.”
 
“학교는 어쩌고?”
 
“형 오늘 생일이잖아. 아줌마한테 허락도 맡았어. 가도 된다고.”
 
“나, 생일이야?”
 
“형은 오늘이 며칠인지도 모르지?”
 
“놀이공원 갈 거였으면 미리 말 좀 해주지. 가방 무겁게 하고 왔는데.”
 
“기다려봐.”
 
 
 
 
 
거북이 등껍질 같은 원우의 가방을 빼앗아 든 민규가 빠른 걸음으로 다시 원우네 집 앞으로 뛰었다. 그리고 현관 앞에 있는 무인택배함 비어있는 곳 하나를 열었고 가방에서 꺼낼 것은 없는지 간단히 물어본 뒤에 그대로 무거운 가방을 넣었다. 가방을 넣은 후에는 * 0717 # 원우의 생일로 무인택배함 비밀번호를 설정했다. 원우는 어깨가 홀가분해져 어깨를 으쓱였고 민규는 자연스럽게 원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제 가자.’는 민규의 말에 멍청한 표정으로 ‘아, 지갑 가방 안에 있는데.’라고 대꾸했고 민규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원우의 손에 있는 지갑을 가리켰다. 원우는 ‘아.’ 소리를 내며 바보같이 헤헤 웃었다. 동그란 안경에 화사하게 웃고 있는 원우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보였다. 오늘도 한 번 더 반하는 민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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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이지만 놀이공원은 의외로 사람이 많았다. 오랜만에 오는 놀이공원에 민규와 원우는 들떴다. 신나게 입장한 후 민규는 놀이 기구의 위치가 적혀있는 팜플렛 하나를 원우에게 건넸고 원우는 지도를 펴 이곳저곳을 샅샅이 탐구했다. 민규는 원우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공원에서 원우의 중학생 3학년 마지막 생일을 같이 보낼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방방 뛰며 좋아하는 원우를 보며 기분이 좋았다. 원우는 동그란 은색 테의 안경을 고쳐 쓰고 손을 한 방향으로 가리켰다. 민규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웃음을 짓고 그 귀엽고 해맑은 웃음.
 
 
 
 
 
“우리 저기로 가자, 민규야.”
 
“그래, 그래. 가자.”
 
“그리고 그 다음에 여기로 가서 이것도 타고 저 것도 타고. 아니, 이것도!”
 
“그래, 형 타고 싶은 거 다 타. 생일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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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야, 우리가 20대 때 같이 놀이공원을 또 올 수 있을까?”
 
“당연하지. 20대가 뭐야. 형이 원할 때 아무 때나 올 수 있어.”
 
 
 
 
 
민규는 갑자기 당연한 것을 물어보는 원우에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Yes를 외쳤고, 원우는 확신에 찬 민규의 목소리를 듣고 어색하게 웃었다. 원우는 다음 놀이 기구를 탈 때까지 민규의 팔을 꼭 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깍지를 낀 손을 조금 더 꼭 잡을 뿐. 내내 바닥을 보며 걸었다. 바닥만 보며 걷는 원우를 보고 민규는 그가 귀엽다고 느껴졌다.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못하는 거라 생각했다. 괜히 귀여워 원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끔 형이지만 이렇게 귀여운 구석이 있다니깐. 바닥을 보며 걷는 원우의 표정이 어두웠고 민규는 원우의 그 표정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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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놀이기구를 타고 다른 놀이기구를 타러 갈 때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원우가 잡고 있던 민규의 팔을 놓고 어디론가 걸어갔다. ‘형 어디가?’ 당황한 민규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원우는 그리로 쭉 걸어서 한 게임장 앞에 도착했다. 원우는 들어가지 않고 민규가 오길 기다렸다가 민규가 원우를 따라잡자 민규를 한 번 보고 웃은 후 민규의 손을 잡고 게임장 안으로 들어갔다. 많은 사람 틈을 비집고 들어가 풍선을 터트리며 다트 게임하고 있는 커플을 가리켰다.
 
 
 
 
 
“우리 저거 하자.”
 
“다트 게임? 하고 싶으면 말을 하지. 갑자기 어딜 가서 놀랐잖아.”
 
“응, 그리고 나 이기면 소원 들어줘, 민규야.”
 
“소원이 뭔데?”
 
“그건 비밀.”
 
 
 
 
 
혼자 손을 놓고 슥 사라진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풍선이 터지는 소리만 들어도 놀라는 원우가 다트 게임이라니 민규는 어이가 없을 뿐 아니라 너무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자신이 못하는 다트 게임을 내기로 내는 것을 보면 소원을 꼭 들어달라는 어떠한 의미 같은데 민규는 게임을 이겨야 할지 져야 할지 난감했다. 형이 들어달라는 소원인데. 눈 딱 감고 다 져주기로 마음먹은 민규는 일부러 풍선에 맞지 않도록 다트를 이리저리 다른 곳에 던졌다. ‘어머, 남자분이 이렇게 못하기도 쉽지 않은데.’하며 다트 게임 담당하는 아르바이트생이 면박을 줬지만, 들리지 않았다. 우리 형이 하나라도 터트려야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데. 오히려 형이 하나라도 터트리지 못하면 어쩌지 걱정할 뿐이었다.
 
 
 
 
 
“내 소원은 이따가 집에 가면 얘기해줄게. 궁금해도 조금만 참아.”
 
 
 
 
 
다행히도 원우가 하나의 풍선을 터트려 내기에서 이겼고 민규는 그 소원이 너무나 궁금했다. 다트 하나 던지고 눈을 질끈 감고 놀라는 원우를 보며 귀여웠지만 한 편으로는 소원이 너무 궁금했다. 대체 소원이 무엇이기에. 집으로 가는 동안 민규는 원우의 소원이 될만한 리스트를 머리에 띄운 후 요리조리 생각해봤다. 아, 뭘까. 진짜 궁금하네. 민규가 이따금 애교를 부려도 셔틀 버스 안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도 원우는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민규는 궁금해 속이 탈 지경이었다.
 
 
 
 
 
“이제 집 앞이니까. 나 소원 말해도 돼?”
 
 
 
 
 
원우의 집 앞에 도착하자 원우가 드디어 소원에 대해 입을 열었다. 민규는 드디어 형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쾌감에 속으로 만세를 불렀고, 원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대체 어떤 소원이기에 이렇게 뜸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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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원우 형이랑 잘 안 붙어 다니네? 둘이 싸웠냐?”
“아니야. 그런 거. 넌 알지도 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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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소원 말해도 돼?
 
 
 
어처구니없게도 원우가 바라던 소원은 ‘헤어지는 것’이었다.
 
‘민규야, 너는 배려심이 많고 착해서 당연히 저줄 거라고 생각했어. 예전처럼 지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만 앞으로 아침에 데리러 오는 일은 안 했으면 좋겠어.’
 
 
 
 
 
붙임 말까지 민규를 멘붕에 빠뜨리기에 완벽했다. 민규는 참으로 어이가 없었지만 그 소원을 그대로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만약 거기서 민규가 화를 낸다면 원우와의 사이가 정말로 끝나는 것 같아서 쉽게 화도 낼 수 없었고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애처럼 보이긴 싫어서 울 수조차 없었다. 민규가 제일 기다려왔던 원우의 생일이 최악의 날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원우를 집에 보내고 민규는 집에는 도통 어떻게 들어간 것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래도 집에 들어가며 유일하게 한 가지 생각났던 건.
 
 
 
 
 
“10년 뒤에 내 생일에 오늘 갔던 놀이공원에서 다시 만나자.”
 
“…….”
 
“네가 나를 계속 좋아한다면 말이야.”
 
 
 
 
 
하여튼 원우의 소원으로 그간 1학년부터 원우를 따라다니던 일을 그만 둬야했다. 길가다 마주치면 여전히 세상 제일 친한 사람처럼 인사했고 우연히 매점에서 마주치면 ‘우리 민규.’ 호칭은 변하지 않았다. 민규는 딱 죽을 맛이었다. 헤어지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데, 난 아직 형을 좋아하는데, 형은 왜 이리 멀쩡한지. 개학한 후 가을까지는 원우에게 전화하여 떼를 쓰고 징징대며 다시 만나달라고 졸랐지만 원우는 단호했다. 12월 말에는 전화도 받지 않는 원우가 미워질 지경이었다. 책상에 엎드린 민규가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됐을까. 미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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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춥던 2월, 오지 않을 것 같던 원우의 중학교 졸업식이 다가왔다. 이제는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 답장도 하지 않는 원우 때문에 민규는 졸업식 전 날까지도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했다. 전화는 받지 않았지만 매점에서 마주치면 여전히 호칭은 ‘우리 민규.’였기 때문에 가야할 것도 같았고 무엇보다 가지 않는다면 민규 자신이 영영 후회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졸업식에 간다한들 원우의 곁에 어떻게 서있어야 할지 민규는 하나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또 그럴 리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혹시나 민규가 다가갔을 때 원우가 민규를 무시한다면 견디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민규와 원우의 사이를 모르는 원우 부모님은 전 날 저녁에 미리 연락을 해 함께 가자고 연락하셨다. 전화를 받은 민규가 침대에 들어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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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내내 민규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졸업식이 진행되는 동안 민규는 원우의 뒤통수에서 눈을 땔 수 없었다. 오늘이 원우를 보는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으니깐. 하나하나 눈에 담고 싶었고 잊고 싶지 않았다. 같은 반 순영선배와 소소한 장난치는 원우, 단체 사진을 찍는다고 앞으로 모여 있는 학생들 중에 매의 눈으로 원우를 찾아 사진 몇 장을 찍었다.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10년 뒤에 만나지 못한다면 이게 마지막 모습이 될 수도 있으니깐. 민규는 울고 있었지만 사진에 있는 원우는 웃고 있었다.
 
 
 
 
 
“민규야, 와줬네. 우리 사진 한 장 찍자.”
 
 
 
 
 
민규의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울고 있었다. 찰칵 소리를 내며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던 건지 민규가 그 자리에서 주륵주륵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원우의 친구들은 ‘역시 민규네, 형이 졸업한다고 울고.’ 민규 속도 모르고 놀리기 시작했다. 민규는 아니라며 손사래 치며 눈물을 닦았고 원우는 당황하며 눈물을 닦아줬다. 오랜만에 닿는 원우의 손길에 민규는 하늘을 보며 울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제 다른 지역으로 가니깐, 못 보잖아 얼마나 슬프겠어.”
 
“형 다른 지역으로 고등학교 가요?”
 
“몰랐어? 너는 당연히 아는 줄 알았는데. 원우 곧 이사 간데.”
 
 
 
 
 
민규는 귀를 의심했다. 다른 지역으로? 당연히 옆 고등학교로 갈 줄 알았는데,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간다니. 7월부터 2월까지 연락이 되지 않았으니 알 리가 없었다. 학교 앞에서, 집 앞에서 몰래 얼굴이라도 보려 했는데 민규는 절망에 빠졌다. 진짜 10년을 기다려야 했다. 사진을 찍고 같이 점심을 먹고 원우 부모님께서는 민규를 집에 데려다 주셨다. 민규는 감사하다며 목례와 함께 차에서 내렸고 원우 역시 차에서 내려 민규를 배웅해줬다.
 
 
 
 
 
“괜찮아, 민규야.”
 
“형……. 형.”
 
“5년 뒤 내 생일에 꼭 다시 보자, 민규야.”
 
“…….”
 
“사랑해”
 
 
 
 
 
민규를 꼭 안아줬고, 등을 토닥였다. 그게 전원우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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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의 김민규는 초조했다. 오지 않을 것만 같던 7월 17일. 매년 7월 17일, 아니 전원우가 생각나는 매순간 그 날이 오면 어떨까? 항상 생각하고 상상했던 민규지만 실제로 십년이 지난 17일이 오자 너무 떨렸고 초조했다. 혹시나 전원우가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민규는 잠에서 깨자마자 제일 먼저 핸드폰을 보고 오늘을 확인 했다. 진짜 17일이 오긴 오는 구나.
 
 
십 년 전에는 내가 원우 형보다 조금 더 컸는데, 지금은 어떨까? 나는 군대 가서도 자랐으니깐, 형도 그랬을까. 나보다 클까, 작을까? 그 때처럼 말랐을까? 하얗던 피부는 군대를 다녀와서 나처럼 까맣게 그을렸을까? 머릿속에 십년 전 전원우를 그려본다. 동그란 안경을 끼고 해맑게 웃던 전원우. 침대 맡에 놓여있는 사진을 보며 십년 전 원우와 있던 일들을 떠올린다. 민규의 마음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데, 혹시나 원우의 마음이 변해 있을까봐. 조금은 두려웠다.
 
 
원우가 이사 간 후 원우의 소식을 물어보진 않았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본다면 원우를 찾아갈 것 같았고 그렇다면 원우가 질려할지도 몰랐다. 또, 십 년 뒤에 만나자는 그 약속이 깨질 것 같아서 두려웠다. 문자도 전화도 하지 못했다. 번호는 바뀐 건지 저장되어 있던 카카오톡 프로필은 꽤 오래 전부터 다른 사람으로 되어있었다. 페이스북 계정도 없어진지 오래 됐다. 정말로 연락 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었다.
 
 
민규는 씻고 나와 몇 벌의 옷을 침대에 깔아두고 옷을 번갈아 몸에 대며 거울을 보고 한참 동안 고민했다. ‘아, 어떤 옷을 입지.’ 원우에게 어려보이기는 싫었지만, 그렇다고 늙어 보이는 것도 싫었기 때문에 한참을 고민했고 겨우 옷 하나를 고르고 입었다.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머리 손질하던 민규가 향수를 손목에 뿌리고 책상에서 시계를 하나 골라 손목에 차며 차키를 가지고 집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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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전과 다르게 민규는 차를 끌고 놀이공원으로 왔다. 원우를 만난다면 신나게 놀고 난 후에 원우를 집에 데려다 줄 생각이었다. ‘십 년 전처럼 데려다 줘야지. 그래야 김민규 답지.’ 벌써 어느 정도 도착하여 눈앞에 보이는 셔틀버스에 민규는 십 년 전의 추억을 떠올린다. 셔틀버스에 뒤늦게 탑승해 자리에 앉지 못해서 서있던 민규와 원우. 혹시나 원우가 휘청거릴까봐, 누군가와 접촉할까봐 민규는 원우를 자신의 품 안에 가뒀고 그 안에서 눈을 대굴대굴 굴리던 원우. 정말 귀여웠는데, 너무 좋았던 추억이 자꾸만 떠올랐다.
 
 
놀이공원에는 십 년 전 그때와 비슷하게 사람이 많았다. 민규는 능숙하게 차를 주차 시킨 후 홀로 매표소 줄에 섰다. 그 때는 원우와 같이 있었는데, 이렇게 혼자 서있으니 민규는 조금 외로웠다. 얼른 보고 싶다, 전원우.
 
 
 
 
 
“성인 한 명이요.”
 
 
 
 
 
계산에 이어 입장권 확인까지 마친 민규는 십 년 전처럼 지도가 그려져 있는 팜플렛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멈춰버렸다. 김민규 눈앞에 십 년 동안 그렇게 보고 싶었던 전원우의 뒷모습이 보였다. 십년이 지났지만 뒷모습만 봐도 전원우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전원우는 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하얗고 키는 컸지만 나보다 작았다. 민규는 원우를 뒤에서 꼭 안았다. 순간 내 눈에만 보이는 환영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이렇게 안을 수 있는 거보니 환영은 아니라는 사실에 민규는 안도했다. 십 년 만에 보는 원우에 민규는 무척이나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뒤돌아 웃는 원우에 민규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민규야, 잊지 않고 와줬네.”
 
“…….전원우.”
 
“보고 싶었어.”
 
 
 
 
 
멋진 모습으로 원우를 만나고 싶어서 이를 악물고 공부도 열심히 했고 다시 만난다면 원우가 원하는 것들을 다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 보고 싶었다며 뒤돌아 꼭 안겨오는 원우에 민규는 그 동안 참고 노력했던 것들을 보상 받는 것 같았다.
 
 
 
 
 
“오늘은 다트 게임 안 해? 나 그 때 형이 소원으로 헤어지자고 해서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알아?”
 
“알지.”
 
“너무 놀라서 화도 안 나더라.”
 
“조금만 더 만나면 알게 될거야, 내가 왜 그런 소원을 말했는지.”
 
“…….”
 
“나도 민규 많이 사랑하고 보고 싶었는데, 그 동안 참느라 너무 힘들었어. 이렇게 볼 수 있어서 너무 좋다.”
 
“나도 너무 좋아, 형. 이제 어디 가면 안 돼.”
 
 
 
 
 
원우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환하게 웃었다. 민규는 그 것을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스물다섯의 김민규, 스물여섯의 전원우. 민규는 기다림이 길었지만 다시는 헤어지지 않고 10년, 20년이 지나도 함께이고 싶었다. 원우도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보고 싶었던 민규, 잊지 않고 나를 찾아와줬구나. 내가 그 때 말도 안 되는 이별을 고했지만, 민규의 마음은 다행히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구나.
 
 
사실 원우도 자신의 졸업식 때 우는 민규를 보고 같이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쩔 수 없이 너와 이별을 해야 했던, 나. 말할 수 없던 모든 비밀. 오늘은 꼭 민규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이래서 너와 헤어졌다고, 그리고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나도 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 너를 사랑한다고. 모두 말해주고 싶었다. 그 때보다 열 살이나 먹은 민규는 더 남자다워져 있었다. 보기 좋게 그을린 구릿빛 피부 역시 너무 섹시했고 넓어진 어깨 또한 너무 멋졌다. 십 년 전 셔틀 버스에서 나를 지키겠다고 품에 가두던 그 어깨보다 더 넓어졌고 듬직해져 있는 민규에 원우는 너무 설렜다. 그리고 너무나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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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와 원우는 십 년 전 과거를 회상하며 그 때 탔던 놀이기구들, 상황들을 되짚으며 십 년 만에 만난 것 같지 않게 하하 호호 웃으며 신나게 놀았다. 저녁에 불꽃놀이까지 모두 본 후 민규가 바랬던 데로 민규의 차로 원우를 집 앞까지 데려다 줄 수 있었다. 조수석에 탄 원우와 원우 쪽으로 상체를 숙여 안전벨트를 매주는 민규에 원우의 볼에는 분홍빛이 돌았고 민규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처음 보는 길, 원우 형이 여기로 이사 갔구나. 지금 사는 민규의 집에서 멀지 않았다. 민규는 앞으로 자주 올 원우의 집을 머릿속에 외웠다. ‘예전처럼 자주 데려다 줘야지.’
 
 
 
 
 
“민규야, 우리 내일도 또 보자. 데려다줘서 고마워.”
 
“그래, 형이 원할 때 아무 때나 올게.”
 
“민규야, 너무 미안해.”
 
 
 
 
 
조수석 문을 닫은 원우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간 연락 하지 못했던 게 미안했던 건가. 민규는 지레짐작했다. 별일 아닐 거야. 민규를 보며 환하게 웃으며 손 흔드는 원우에 민규 역시 원우를 향해 손 흔들었다. ‘내일 또 보자, 형. 내일 데리러 갈게.’ 원우는 고개를 끄덕였고 역시나 손을 흔들었다. 원우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 민규가 차를 출발 시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동안 계속 콧노래를 불렀고 누구라도 지금 민규의 모습을 보면 기분 좋아 보인다고 단박에 말할 정도로,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민규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행복했던 오늘 하루를 되새겼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귀엽게 오물오물 츄러스를 먹던 그 입술. 아, 다시 만나면 꼭 뽀뽀 하고 싶었는데. 오늘 너무 긴장했나봐, 못했네. 진짜 해주고 싶었는데. 이, 덥다. 민규가 아무렇게나 침대에 누웠다. 아침부터 너무 긴장한 탓일까. 씻지도 않았는데, 민규의 눈이 조금씩 감겼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자자. 옷도 갈아입지 않고 누운 민규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원우 꿈꾸길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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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하루를 보낸 민규가 눈 뜨자 무언가 느낌이 이상했다. 분명 어제 침대에 아무렇게나 쓰러져서 잤는데,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이불도 덮고, 잠옷도 입고. 분명 그럴 리가 없는데, 민규가 벌떡 상체를 일으켜 급하게 머리맡에 있던 핸드폰을 켰지만 핸드폰은 꺼져있었다. 급하게 핸드폰을 충전기에 연결 시켜서 핸드폰 전원을 켰지만 그 마저도 기다리기 힘들었다. 민규는 급하게 거실로 나와 리모컨을 찾아 전원 버튼을 눌렀다. 7월 17일.
 
그럴리 없다. 분명히, 분명히 어제가 7월 17일이었다.
어제 분명히 전원우 봤단 말이야.
 
핸드폰을 확인하려 다시 침실로 들어와 침대 옆에 놓여있는 달력을 봤을 때,
7월 17일. 전원우 기일.
 
그리고 놓여있는 웃고 있는 중학생 교복을 입은 앳된 전원우와 김민규. 사진 한 장.
 
 
 
 
 
아, 다 꿈이었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했구나.
보고 싶었는데.
전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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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김민규♥
 
민규야, 10년 뒤 내 생일에 날 보러 와줬구나.
네가 이 편지를 본다는 건 10년 동안
나에 대한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는 거겠지.
그리고 내가 죽었다는 거고. 그건 너무 싫다.
이 거 전해주기 싫어. 그 때까지 꼭 살아있고 싶어.
내가 내 입으로 말해주고 싶다, 꼭.
혹시나 내가 죽는다면 네가 스물다섯이 되고
내 생일 날 너에게 전해달라고 부모님께 부탁했는데.
네가 슬퍼하는 모습 보고 바로 주시진 않을까 걱정 된다.
어차피 네가 봐야할 거니깐 아무래도 상관은 없어.
10년 전에 약속한 거.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진짜 지키고 싶었는데, 다시 거기서 그 장소에서.
거짓말이라고 아직 좋아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그 약속 지키지 못할 것 같아.
다 나으면 꼭 말해주고 싶었는데.
너한테 아픈 거 숨겨서 미안해.
네가 내 걱정할 거 생각하니까 말 못하겠더라.
너는 배려심이 많고 착해서 아마도 아픈 나를 매일 만나러 왔을 거야.
그럼 내가 너무 미안하니까.
그냥 내가 나쁜 사람이라 생각하고 잊어줬으면 좋겠다.
이 편지 보면 너 또 울 거잖아. 내 중학생 때 졸업식처럼 말이야.
아, 이 거 비밀인데. 사실 너 졸업식 때 몰래 갔었다?
네가 중학교 졸업하면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니깐. 정말 보고 싶어서 갔었어.
나 혼자서만 몰래 보고 와서 미안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왔다고 인기척하고
조금 덜 아플 때 사진 한 장 찍을걸.
네 졸업식에도 추억 하나 더 남겨주는 건데, 미안해.
그래도 나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고마워, 민규야.
항상 고맙고 미안해.
너무 보고 싶다 민규야.
펀지가 너무 길어졌다. 이 쯤 쓸게 우리 꼭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민규야. 사랑해.
 
 
 
20xx년 4월 6일 _ 민규를 사랑하는 원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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