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외진 곳에 가서 말 없이 콱 죽어버려. 혼자서 쓸쓸하게."
버릇처럼 내뱉는 저주는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텅 빈 검은 눈동자에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담아내지 않았다고 장담하였다. 차라리 속이 편했다. 내가 뭐라고 지껄여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오만한 태도가. 나를 더 지독하게 만들었을지언정. 하고싶은 말들을 가감없이 떠들 수 있었다는 게. 어린 날의 숨구멍이고 속 풀이었다. 그것을 네가 하나 하나 소중하게 담아두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면, 우리는 지금 달라졌을까.
“어디 갔는지, 네가 제일 잘 알 거 아니야!”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매서운 손짓에 왼쪽 뺨이 화끈거렸다. 찢어질 듯이 소리를 지르는 어미라는 사람을 있는 힘껏 노려보고 뒤돌아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있을 때 신경 하나 안 쓰더니 왜 나한테 지랄이야. 민규는 얼얼한 볼을 감싸면서 침대에 온 몸을 푹 묻었다. 그 애가 사라진 지 벌써 열흘이 지나갔다. 처음 하루 이틀은 모두가 손을 걷어붙이고 찾아 나설 것처럼 입방아에 그 애의 이름이 오르락 내리락했다. 경찰도 밤새 수색을 해줄 것 마냥 그 애의 행동거지나 사소한 버릇을 캐물었다. 일주일이 지나면서 모두의 기억 속에서 그 애는 서서히 잊혀지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이미 죽은 사람 취급하는 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교실 구석진 곳에서 말 없이 책장을 넘기던 희미한 존재감이, 너무나 쉽게 지워졌다.
나 때문이 아니야. 입에 달고 살았다. 꺼지라고 했다고 진짜 꺼지는 병신이 어디 있어. 내 잘못 아니야.
7월의 햇살은 뜨겁다 못해 매서웠다. 그늘을 찾아 나무 아래로 들어가도 나무가지, 잎 사이로 레이저를 쏘는 것 마냥 햇빛이 내 뒷목을 괴롭혔다. 유난히 더위를 잘 타는 나는 교복 셔츠 단추 2,3개는 풀고 다니기 일쑤였고 선도부 선생님이라도 마주치면 아예 홀딱 벗고 다니지 그러냐, 는 등의 면박을 심심치 않게 받았다. 학교 에어컨 작동 시간은 정확히 1교시 시작시간이였으며 그마저도 늙은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언덕을 오르듯이 쾌쾌한 냄새와 우웅-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한다. 반 전체가 시원 해지려면 적어도 에어컨 켰는데 왜 이렇게 더워요 선생님? 소리가 네, 다섯번은 나와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억울하다는 듯이 맨 처음 스타트를 끊는 사람은 물론 나다. 1교시 시작 시간 전에는 모두가 교실 양 옆에 달린 선풍기에 다닥다닥 붙어서 선풍기가 자기 쪽으로 목이 꺾이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중 큰 키를 자랑하며 맨 뒤에서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는게 민규였다. 아씨, 아침에 샤워하고 왔는데. 벌써 땀범벅이야.
그에 비해 원우는 건조한 얼굴을 하고 교실 한 켠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심지어 에어컨이 작동하기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춥다는 듯이 가디건을 걸쳐 입기까지, 더위를 어지간히 안 타는가 싶다가도, 창백한 얼굴을 보면 본래 허약한 탓인 것 같다.
"56페이지, 3번째 줄부터 원우가 읽어봐."
"네."
드륵, 의자 끄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났다. 몽롱한 기운에 옆을 흘겨보았다. 움직일 때마다 살짝 풍기는 체취가 익숙했다. 그제서야 민규는 제 옆자리가 원우임을 자각했다. 맞아 얼마전에 자리 바꿨지. 있는듯 없는듯 존재감이 희미해서 이럴 때나 새삼 깨닫는다. 맞다 옆에 있었지, 그리고 내 짝꿍이지.
"나는 급하게 옷을 주워 입었다. 개미 한 마리가 방바닥을 내 발이 있는 쪽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그 개미가 내 발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얼른 자리를 옮겨 디디었다."
차분한 중얼거림이 왼쪽 귀에서 울려왔다. 졸음을 참지못해 엎드린 내 시야에는
전원우의 마른 허리 한 줌, 특유의 향기가 나는 손등까지 덮는 가디건. 보슬보슬해 보이는 머리칼. 그리고 무언가를 열심히 끄적인 듯한 공책이 보였다.
"김형, 우리는 분명히 스물다섯 살짜리죠? 두려워집니다."
다리를 왼쪽으로 살짝 뻗어 전원우의 단정한 컨버스화를 지긋이 밟았다. 답지않게 멀쩡한 척을 하는게 가증스러워서. 누가 보면 진짜 평범한 학생인 줄 알겠어 원우야. 낮은 읊조림에 책을 든 얇은 손가락이 잠시 움찔거린다. 매번 상처투성이의 마른 팔과 다리, 불행으로 일그러진 얼굴, 곱게 휜 눈꼬리에 맺힌 땀과 눈물이 섞인 그 무언가. 집에서 와는 퍽 다른 단정하고 차분한 모습에 소리없이 웃음을 흘렸다. 학교에서의 전원우는 제법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꼴사나웠기에.
아 씨발 뭘 보는데, 아마도 내가 너에게 건넨 첫 마디. 작고 빼빼 마른 검은 눈망울이 이제는 썩은 동태 눈깔처럼 탁해졌다. 이젠 들은 척도 안 하냐 재미없게. 작은 중얼거림은 대꾸조차 않는다. 저렇게 만든 건 나지만 서도. 그냥, 재미가 없었다.
"민규야, 엄마가 너 도시락 싸줬는데 왜 안 챙겨갔어,"
"너나 먹던가."
그래도 너 야자 한다니까 생각해서 챙겨주신건데, 좀 먹지? 귀찮게 줄줄이 따라오는 말이 인상을 팍 쓰니 그제서야 입을 다물었다. 어떤 생각을 하면서 챙겼는지 알겠으니까 더더욱 싫은 건데. 입양한 아들놈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해서 밥도 반찬도 공평하게, 오히려 입이 짧은 전원우 쪽의 도시락이 더 간소했다. 소란스러운 정성이 가득한 도시락은 보기만해도 속이 더부룩해졌다.
"진짜 안 가져가?"
"니가 다 먹든가 버리든가 알아서 해."
곤란한 얼굴로 입술을 깨무는 전원우의 마른 어깨를 치고 지나쳤다. 그리고 피시방에서 몇시간을 보냈을까, 진하게 밴 담배냄새를 빼면서 끼니는 대충 컵라면으로 해결했다. 밖이 꽤 어두워지고나서야 발길을 돌렸다. 지겹고 숨막히는 곳. 으리으리한 현관문을 열고 들아 오자 쏟아지는 관심에 빙그레 웃고 말았다. 네네, 원우한테 받았어요. 잘 먹었습니다. 아뇨 안 부족했어요 오히려 너무 많던데요.
"그래? 너무 싹싹 비웠길래 부족했나 싶었지. 다행이네."
그 날 이후로 전원우는 기어이 며칠을 변기통만 붙잡고 있었다. 병신같은 게, 그냥 요령껏 버릴 것이지. 꾸역 꾸역 내 도시락을 그 작은 입에 밀어 넣었다더라.
"미련한 새끼."
"니가 무슨 상관이야, 신경 꺼."
전원우 답지않게 제법 신경질적인 대답에도 큰 타격은 없었다. 신경질이야 원우보다 민규가 더 했으면 더 했지. 결코 덜 하진 않았으니까. 지금 당장 원우의 얇은 입술에서 쌍욕이 나온 대도 할 말이 없는 처지임에는 확실했다. 10년 가까이 정말 끈덕지게, 다양한 방법으로 원우를 눈물짓게 해왔으니까. 얼마나 참는지, 어디까지 가는지, 밑바닥이 어디인지 오기로 보내온 시간들은 역으로 민규의 밑바닥을 보여주곤 했다.
"이거, 놔."
"가만히 좀 있어봐 진짜."
눈물이 그렁그렁한 작은 얼굴을 억세게 붙잡고 잡아 끌었다. 빨리 입 벌려. 육식동물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낮은 읊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원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너 진짜,”
“왜, 할 말 있어?”
말 할 시간은 어차피 안 줄거 지만, 애초에 궁금하지도 않았다는 듯이 민규의 입술이 덮쳐왔다. 끈덕지게 섞여 들어오는 타액과 혀에 정신이 혼미했다. 중심을 못 잡고 비틀거리는 몸을 단단히 붙잡고 마음껏 탐했다. 고른 치열도, 선홍 빛 입술도, 하얗고 창백한 목덜미도, 툭 튀어나온 쇄골도. 전부. 흐.. 앓는 소리가 삼켜져 원우의 목구멍으로 넘어왔다. 숨 쉬기 힘든지 얄팍한 가슴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자꾸 다리에 힘이 풀려 민규에게 반쯤은 매달린 상태이다. 있는 힘껏 싫은 티는 팍팍 내면서, 결국 이 꼴이야? 입술을 떼고 붉어진 목덜미를 감싸 안고 속삭였다.
“야, 너 설마 섰냐?”
“......미친새끼 진짜.”
욕정이 나서 입술을 맞대긴 했지만 감정이 담겨있 진 않았다. 오로지 해소를 위한 행위였기에. 가끔 먼 발치에서 지켜보 긴 했지만 마지막 양심에서 흘러나온 가소로운 관심이었다. 숨통은 잘 붙어있는지, 중간에 어디로 도망가지는 않았는지. 집에 돌아갔을 때 부모님의 얼굴을 마주하기 위한 면목에 의한 눈길이었다.
그리고 우리 집안 사람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전원우가 죽은 사람이 되어버렸을 때, 내 치기 어린 마음은 생명의 물꼬를 텄다. 당장 너를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입이 떨어지기는 할까. 미안하다고, 실수였다고 삼류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파렴치한 대사를 날리면 넌, 대답이나 해줄까. 새카만 눈동자에 나를 또 담아줄까. 꼴도 보기 싫다고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릴 수도.
꿈을 꿨다. 전원우가 작은 나무상자에 담겨 가루가 되어서 돌아오는. 꿈속에서 나는 하염없이 울다가 스스로 목을 졸라 자살을 했다. 작고 마른 몸이 어디서 생을 다했고, 또 차가워진 몸뚱이를 뼈대만 남을 때까지 활활 태워서는, 언제 바람에 날라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곱게 분해되어버렸다는 게. 화가 나고 억울해서. 하염없이 울다가 살아있는 나를 견딜 수가 없어졌다. 내가 이렇게 죽어도 넌 저승에서도 나로부터 도망가겠지. 그래도 같은 세계에 라도 존재하고 싶다는 생각에 너를 따라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고양이는 죽을때가되면 주인 눈을 피해 숨어서 죽는 대. 보통 마지막 순간에는 주인 이랑 함께하고 싶지 않나? 친구의 철없는 중얼거림이 뇌리를 스쳤다. 정말 전원우답다. 다른거라곤 고양이는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주인으로부터 도망간거겠지만, 전원우는 그냥 도망 그 자체가 목적 일터였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도망. 먹먹한 가슴을 아무리 주먹으로 두드려도 숨이 벅차 올랐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이 툭 터질 때까지 꽉 깨물었다. 꼴 좋다 김민규.
"원우야."
"...."
"원우야, 듣고 있어? 듣고 있어줘 그냥."
처음이라 그랬어. 라고 하면 믿어주겠니. 그냥 네가 다 처음이라 그래. 웃기지도 않는 변명이라는 거 나도 안다. 그래도 그냥 그렇구나 라고 해줘. 너 맨날 그래줬잖아. 이번 한번도 속는 셈 치고 아 그래 민규가 처음이라 그랬구나. 라고 생각해. 너가 다 처음이었다. 그렇게 미운 사람도, 그렇게 좋은 사람도, 다 너가 처음이였어. 주체 못할 만큼 너가 밉다 가도 한없이 그립고 애가 탔다. 이게 무슨 감정 인지도 모르고 모든걸 네 탓으로 돌리고 마음껏 마음을 쏟았다.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돌이킬 수 없는 지금을 만들었지만. 내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 그 끝은 항상 너를 향했다. 사실 너도 알면서 묵묵히 받아낸 것이 아니겠니. 용서도 안 바라고 날 봐주는 건 더 안 바라고 그냥.... 잘 지내고 있다고, 그냥 신호라도 줘라. 너같은거 버리고 잘 살고 있다고 자랑이라도 해줘. 그럼 나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만약 너 잘못되기라도하면 나는,
"나는...."
"...."
흐려지는 시야에 고개를 푹 숙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에 어쩐지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너가 종종 멍하니 앉아있던 공원 벤치 앞에서. 감히 네 온기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지도 공간을 더럽히지 도 못하고. 이미 차가워진 공간인데. 너의 조각이 조금이라도 있을까 벌벌 떨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눈물이 송골송골 맺힌 콘크리트에 작은 캔버스화 신발 코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쏟아낸 눈물 자국을 밟고 마르고 창백한 발목이 내 앞에 나타났다.
"아...."
"...."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아 목놓아 울었고. 무뚝뚝하고 차가운 손은 내 머리를 토닥였다. 아무 말도, 아무 감정도 실리지 않은 무딘 손길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분명 다행인데, 내 억장은 왜 이리도 무너지는지. 너의 손길은 정말 예전부터 하나도 변한 것이 없어서. 너의 몫까지 내가 서러워 계속 울었다.
내가 감히 너를 행복하게 만들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보려고 한다.
나의 모든 처음인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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