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총성은 가슴을 뚫고 지나간다. 두 번의 총성과 한 번의 비명, 공기를 통해서 전해진 그런 상황들은 공교롭게도 한 공간에서 존재를 드러낸다. 누군가는 붉은 혈을 흘리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지만 단 한 명의 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소름 돋는 웃음을 입가에 가득을 머금은 채로 이내 자신의 몸이 중력을 이기지 못해 쓰러지는 것을 느끼며 그는 그렇게 쓰러졌다. 바닥에서 마주한 두 얼굴의 온도는 너무도 달랐다. 그 두 사람과 함께 떨어진 두 자루의 총기는 이리저리 나뒹굴고 그들도 나뒹굴었다. 눈물을 흘리는 이는 눈을 감지도 못한 채로 그 눈빛의 공간을 잃어가고, 미소를 머금은 자는 서서히 시야를 차단하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사랑해.”

  이젠 공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아무 것도 전해지는 것이 없는 공간은 쓸쓸한 공허만을 남긴 채로 시간을 흘려보낸다. 잔혹한 시간이 흐른다.





B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피곤한 몸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을 지나 신발을 벗으려는 찰나 그의 눈에는 낯서나 익숙한 신발 한 켤레가 눈에 들어왔다. 손에 힘겹게 쥐고 있던 가방을 떨어뜨렸다. 호흡이 가빠지는 것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과거의 삭제된 그 장면이 의도와는 다르게 머릿속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간다.







A



  주저앉았다. 말 그대로 그의 무릎은 아래로 사정없이 떨어졌다. 눈물을 흘리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니, 그것들이 비쳐진 눈물은 이미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가 주저앉은 그곳의 배경은 혈흔으로 가득했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고자 했는데, 목소리가 애초에 없던 사람처럼 아무 소리도 낼 수가 없었다. 그의 시야 끝으로는 힘없이 앉아있는 두 송장 사이로 보이는 한 남자였다. 피가 가득 묻은 손으로 여유롭게 샌드위치나 먹고 있는 남자를 보며 그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어림도 없었다. 너무도 가볍게 피해버린 남자에 의해 그는 피가 흥건한 바닥으로 떨어졌다.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날카로운 것을 들곤 그에게 다가왔다. 이미 샌드위치는 바닥에 버려진 상태였다. 뽀얀 빵의 단면이 선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날카로운 것은 그의 목 언저리에 자리했다. 그 날선 것을 피하기 위해서 그의 고개는 점점 올라가 결국엔 남자와 눈을 마주했다. 그의 눈동자는 사정없이 떨렸다. 공포에 찬 눈이었다. 남자는 아무런 말도 없이 입에 남은 샌드위치를 씹으며 그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날을 거두곤 두 손으로 거칠게 그의 턱을 쥐어 잡았다. 살이 떨리는 감각이 남자의 손으로 타고 그대로 느껴진다. 남자는 씹던 샌드위치를 삼키곤 실실 웃었다. 그리곤 그에게 키스했다. 급하게 떨어진 입술에서는 흥미롭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 안 무섭구나?”

  소름끼치도록 낮은 목소리, 남자는 다시 한 번 키스했다. 그는 피하지 않았다. 피할 수 없었던 것인지, 피할 생각이 없는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남자에게 반응했다. 그것만으로 이미 남자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그는 어렵사리 입을 연다.

  “찔리면, 아파?”

  “안 찔려봐서 모르겠는데, 죽기 전에 쟤네한테 물어볼 걸 그랬나?”

  “그럼 나도 찔러, 내가 말해 줄게.”

  “근데 너 되게 잘생겼다.”

  남자는 익살스럽게 웃었다. 그리곤 그를 두고 그냥 그렇게 사라졌다. 그는 그렇게 피바다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이미 온도가 식어버린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그는 웃었다. 우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흐른 그것이 마치 물감인양 그는 그렇게 웃었다.







B'



  그는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향했다. 한 발자국씩 가까워질수록 티브이가 내는 소음이 귀에 뚜렷하게 박혔다. 그는 마치 준비가 다 되어있던 것처럼 옆 선반에서 짧은 총기 하나를 꺼내어들었다. 그리곤 언제 불안해했냐는 듯이 태연히 티브이가 켜진 곳으로 향했다. 이미 늦어버린 시각에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그저 지직 대는 장면만이 가득 찬 티브이와 그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남자, 둘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웃었다. 마치 꿈에서나 그렸던 연인을 마주하는 듯한 언어를 뱉으면서. 안녕, 보고 싶었어. 그는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남자는 그의 마지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안겼다. 너는 나 안 보고 싶었나봐, 섭섭하게.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투정을 부리는 언어를 그는 꺾어 죽이고 싶었다. 그는 미소 지으며 남자의 입술 주변으로 다가갔다. 남자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 움직임에 응했다. 이내 둘의 입술이 마주한다. 이전과는 다르게 둘의 입술 사이에는 아무 것도 칠해져 있지 않았다. 그때처럼 붉은 물감은 존재하지 않아. 투명하게 입술만의 촉감을 서로의 혀로 희롱했다. 정말 애틋한 사이인 것처럼.

  먼저 입술을 물린 것은 남자 쪽이었다. 그리곤 멀지 않은 거리에서 속삭였다. 정말 그에게만 들릴 듯한 목소리로.

  “사랑한다고 해줘.”

  “우리가 그럴 사이야?”

  “그럼 싫다고 말해 봐.”

  “싫어.”

  “거짓말, 사랑하잖아.”

  둘의 간격은 더욱 가까워졌다.

  “나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완벽하네.”

  남자는 그의 옷을 급하게 벗겨내었다. 달뜬 신음이 이 방을 채우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남자를 게걸스럽게 탐했고 남자는 그 위에서 허리를 흔들며 짙은 교성을 뱉을 뿐이었다. 그는 남자의 상체를 끌어안고 있는 힘껏 제 것을 쳐올렸고 남자는 그의 물건에 따라 모양새가 변하는 제 속의 변이를 느끼며 서로를 애틋함을 가장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근데 우리 콘돔 안 했잖아. 그는 남자의 귀에 속삭였다. 남자는 그의 머리채를 잡았다. 좆 식는 소리 하지 마. 이어서 제 뒤를 꽉 조인다. 그가 사정감을 참으려 허리짓의 속도를 늦추자 남자는 그 조인 뒤를 더 유연하게 움직였다.

  하얀 거품이 질척이는 구멍에서 그의 것이 빠져나오자 그의 흔적이 물밀듯이 따라 나왔다.

  “기분 좋았나봐, 나한테 이런 선물까지 준비하고.”

  남자는 제 심장에 겨눠진 총구를 보며 열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더욱 깊이 심장 쪽으로 그것을 들이밀었다. 이런 거 빠는 취미는 없는데, 좀 치워줄래? 낮고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그는 이전과는 다른 목소리로 그에게 속삭였다.

  “지금 이게 장난 같아?”

  남자는 얼굴에서 온기를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곤 독기를 가득 품은 얼굴을 바라보며 대견하다는 듯이 웃었다.

  “넌 지금 내가 얼마나 기쁜 지 모를 거야.”

  “헛소리 할 거면 닥쳐.”

  “지금 네가 나한테 총을 겨눴는데 내가 어떻게 기쁘지 않을 수가 있어? 나는 지금 네가 너무 자랑스럽고 대견해.”

  “헛소리 할 거면 닥치라고.”

  “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할 수 있어.”

  “미안하지만, 넌 못 해.”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당신이 그렇게 사라져버린 그날 밤부터 지금 이렇게 당신에게 총구를 겨누는 순간까지, 내가 너무도 기다렸던 장면이야.”

  “난 언제나 네가 가여워, 그냥 내 그늘에서 가만히 숨 쉬기만 하면 될 텐데.”

  “죽일 거야.”

  “사랑해.”

  “죽일 수 있다고!”

  “나 사랑하지?”

  그가 쥐고 있던 총구의 끝이 떨렸다. 그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는 남자를 그는 막을 수 없다. 남들보다 온도가 낮은 남자의 손이 그의 볼을 감싸옴과 동시에 목소리는 그를 괴롭혔다.

  “나 사랑하잖아.”

  “당신은?”

  그러는 당신을 나를 사랑해? 그의 눈에 물기가 서린다. 애정을 갈구하는 어린 아이라도 된 것처럼 애틋한 눈을 한 채로 남자를 바라본다. 총구는 더욱 남자를 파고든다. 대답을 재촉한다. 남자는 그의 얼굴을 조심히 당겨 입을 맞춘다. 그리곤 방아쇠를 쥔 그의 손에 제 손을 겹쳤다. 입맞춤이 점점 격해지고 남자는 그 방아쇠를 당기고자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그는 남자에게서 화들짝 놀라며 떨어졌다. 남자는 히죽거렸다.

  쏠 수 있다며, 왜 겁나? 남자는 그에게 다가선다. 조금씩, 그리고 한 발씩. 민규야, 어디 가, 이리로 와야지. 남자는 그를 민규라 칭하며 다가갔다. 나한테 와야 내가 답을 해주지. 민규는 고개를 저었다. 그거 말고.

  “사랑한다고 말해줘야지.”

  “아직 어리네, 우리 민규.”

  “사랑한다며, 나한테 사랑한다고 했잖아.”

  “그래, 그랬지.”

  “근데 왜?”

  “지금은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거든.”

  “변했구나.”

  “아니, 난 그대로야.”

  “그럼 나 때문이구나.”

  이내 한 번의 총성이 들린다. 민규는 들고 있던 총을 힘없이 떨어뜨렸다. 남자는, 아니 그가 사랑했던 남자 전원우는 저를 사랑한 김민규를 향해 뻗은 총구를 거두었다. 말했잖아, 넌 날 죽이지 못한다고. 근데 난 진짜 할 수 있어, 난 널 사랑한 적이 없으니까. 원우는 점점 식어가는 민규를 안았다. 원우의 옷마저 붉게 물들어가고 민규의 눈에서는 가득 찼던 물기가 중력에 몸을 맡긴다.

  두 번째 총성이 방 안을 가득 채운다.

 



A`



  전원우는 김민규에게 키스한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그의 얼굴을 잊은 적이 없었다. 두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그 얼굴, 제 입안을 헤집는 혀에 맞장구를 치는 그 야살스러운 혀와 겁도 없이 꼭 감은 두 눈, 그 날 이후로 전원우는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원망을 버렸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 소원이 생겼다. 모든 일을 끝마치고 김민규 손에 죽는 것, 이기적으로 그의 외모만을 탐하며 소실하는 것. 전원우는 언제나 김민규의 곁을 맴돌았다. 큰돈을 따내어 비싼 와인을 뜯을 때에도 돈이 없어 값싼 빵을 뜯고 있을 때에도 전원우의 곁에는 늘 김민규가 있었다.

  김민규를 노골적으로 노리기 시작한 것에는 동기가 없다. 우연이었다. 전원우는 운명, 우연 뭐 그딴 것에 혐오하는 인간이었지만 이 일은 그것이 아니라면 설명할 방도가 없었기에 그러려니 했다. 그래 사는 동안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어야지 하는 마음이기도 했다. 김민규를 볼 때마다 전원우의 가슴에서는 불이 타올랐다. 지금껏 많은 일을 해오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희열, 그리고 가지고 싶다는 욕망. 전원우는 그렇게 늘 김민규를 두 눈으로 쫓았다.

  원우는 타이밍을 만들었다. 가장 이질적인 시간, 전원우가 김민규의 시간에 개입하기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 엉뚱한 타이밍 원우는 그걸 비집고 들어갔다. 민규의 집에 들어와 티브이를 틀었다. 늦은 시각이라 그런 지 아무런 채널도 재생되지 않았다. 그의 현관에 총이 있다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사실 없으면 섭하려고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다행이야, 네가 내 기대에 미치는 사람이라서.

  전원우는 눈을 감고 그를 기다렸다. 빨리 그 잘생긴 얼굴을 마주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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