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이따 술 한 잔 할래요? 종종 이런 식으로 연락이 오고는 했다. 별 다른 뜻은 없다. 다른 사람들과 잔을 부딪히기엔 피곤하고 혼자 잔을 기울이기엔 외로워서. 주변 공기를 적적하지 않게 해주면서도 본인의 성미를 거스르지 않을 만한 사람이 주변에 나 밖에 없었을 뿐이다. 그런 사람이 속으로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알기나 할까. 액정 위로 뭉툭한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래. 어디서 볼까.



금요일 밤인지라 주점은 온통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민증 보여주실게요. 알바생에게 민증을 건넨 뒤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테이블을 찾았다. 어두운 조명에 눈을 한껏 찡그리는데 별안간 몸이 돌려세워진다. 어, 민규야. 대답대신 알바생에게 내 민증을 받아들고 안쪽으로 들어간다.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는 길이었는지, 테이블을 찾아 헤매는 날 보고 온 건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메뉴판을 내 쪽으로 돌려준다. 몸에 배어있는 친절이었다. 웬일로 오늘은 포차야? 둘 다 주로 조용한 분위기를 선호했기에 이런 포차는 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오랜만에 소주나 마실까 해서. 안주는, 이거 괜찮아? 고개를 느리게 끄덕이자 벨을 눌러 주문을 한다. 일단 소주 한 병이랑 이거 하나 주세요.



이런 저런 대화가 오가고 금새 소주 두 병을 비웠다. 취기가 오르는 것 같았다. 손등을 들어 뺨에 갖다대자 열감이 느껴진다. 형이랑은 하나도 맞는 게 없는 것 같아.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앞 뒤 맥락없이 던져진 말에 고개를 들어 민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웃음기 없는 얼굴로 테이블 위만 쳐다보고 있다. 그래도 형만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아. 이어지는 말에 취기에 돌던 열감이 싹 가라 앉는 것 같았다. 누가 시켜서 이러고 있는 건 아니라지만 저런 말을 들을 때 마다 온몸의 피가 차게 식는 것 같은 느낌은 어쩔 방도가 없었다. 나는 김민규의 연애 대상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음을 다시금 되새길 때면 알고 있던 사실임에도 썩 유쾌하진 않았다. 까끌한 입 안에 술잔을 털어 넣고 쓴웃음을 지었다. 알면 잘해, 인마. 장난스런 내 말투에 본인이 못한 게 뭐 있냐며 억울한 척 푸념을 늘어놓는다.



11번 테이블 계산이요. 카드를 내밀자 민규가 막아선다. 제가 먹자했으니까 제가 낼게요, 이걸로 해주세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내미려는 민규의 손목을 붙잡아내렸다. 너 알바도 안 하잖아, 사줄 때 받아먹어. 내 말에 순순히 꼬리를 내린다. 계산을 마치고 주점 밖으로 나오자 찬 공기가 옷속으로 파고든다. 담배 피러 나온 건지 외투도 입지 않은 채 라이터를 켜는 사람이 몇몇 보였다. 민규, 너 담배끊었어? 대뜸 묻는 말에 걸음을 멈추고 나를 멀뚱히 쳐다본다. 저 담배 안피는데요? 이미 예상하고 있던 대답이었지만 직접 들으니 웃음이 났다. 고등학교 때 폈었잖아, 모를 줄 알았지. 민규를 쌩하고 지나쳐 걸어가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넓은 보폭으로 금새 쫓아온다.



"어떻게 알았어요? 엄청 신경 쓰고 다녀서 아무도 모를 텐데." "그러게, 담배 냄새 한번 안 나던데."



"그럼 어떻게 알았는데?"



 "고등학교 때 너 한참 입고 다니던 외투에 담뱃재 묻어있더라. 가끔씩 손에 상처도 보이고. 그래서 아, 쟤는 담배 피는 구나 했지."

"형 기억력 되게 좋네요. 그땐 우리 별로 안 친하지 않았나."



또 쓸데없는 말을 해버렸다. 혹여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러게. 나 기억력 좋은가봐. 굳어버린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리고 곁눈질로 민규를 살폈다. 별 생각이 없는지 으, 춥다. 하고 옷을 여미는 모습에 한시름 놓았다. 아무튼 지금은 잘 안 펴요. 그때야... 너무 갑갑하니까 폈지, 이제는 뭐. 그렇게 말하는 표정이 후련해보였다. 고등학교 때 이따금씩 민규에게서 예민함을 느끼곤 했었다. 후에 알게 된 건데 부모님의 불화가 심했다나. 부친은 모대학 교수, 모친은 이름있는 기업 CEO, 주변의 관심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민규가 예민해질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허우대 멀쩡한 집안의 불화는 가십거리가 되기 쉬웠기 때문에. 어찌 잘 해결됐는지 가정은 건재하고, 이는 민규에게 모여드는 사람 수에 한 몫을 했다.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아양떠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민규를 지치게 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지금 이 위치에 조차 있지 못 했겠지.



같은 고등학교더라도 학년이 다르니 접점이 만들어 질 일이 없었다. 방송부 면접 전까지는. 잘생긴 신입생 대표, 김민규. 1학년 뿐만 아니라 2학년 사이에서도 나름 유명했었던 민규는 외모 못지 않게 매끄러운 말 솜씨를 가졌고 면접에서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첫인상은 잘생겼네. 그게 전부였다. 민규를 보러 기웃거리는 학생들이 종종 있어 오히려 탐탁지 않게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두 눈은 민규를 쫓고있었다. 처음으로 누군가에 향한 자신의 마음을 자각했고, 처음으로 포기했다.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닌 이상 노력해서 끝내 성취하는 성격이었지만 이건 아니었다. 감정을 가슴 깊숙이에 숨겼고, 흘러넘치려하면 억눌렀다. 내 감정을 숨기기에 급급했기에 민규를 대하는게 힘겨웠고 이는 민규도 느꼈을 터였다. 너 혹시 민규 싫어하냐? 하고 순영이 내게 물었을 지경이었으니. 민규와 친구인 석민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대하면서 유독 민규에게만 불편함을 표하는 나 때문에 부장이었던 순영은 꽤나 골머리를 앓았을 것이다. 하지만 들키느니 차라리 불편한 게 나았다.



2년이라는 시간은 길었지만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말이 2년이지 대학입시로 3학년은 거의 부활동에 참여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마음은 시들 길이 보이지를 않았다. 어딜가나 시선 끝에는 결국 민규가 있었기에. 졸업할 즈음엔 전부 체념했다. 시간이 지나도 식지 않는 감정과, 그 감정을 숨기겠다고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드는 자신에. 처음에 포기한다고 했던게 아마 그제서야 놓아졌던 것 같다. 졸업 축하해요. 그 한마디를 건네는 민규에게 마지막날에서야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 웃었던 것 같다. 혼자만의 첫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다.



 "저 오늘 자고 가도 돼요?" "들어오고나서 묻는 건 뭐야." "아, 그런가."

머쓱한 척 머리를 흐트러뜨리는 민규에 옅은 웃음이 났다. 언제는 뭐 물어보고 자고 갔냐. 민규는 술을 마셨다하면 집으로 가는 일이 없었다. 지나가는 말로 얼핏 어머니가 술 마시는 거 되게 싫어해. 라고 말하는 걸 들었던 것 같다. 나와 술을 마실 때면 내 자취방에서 자고 가는 일이 태반이었다. 좁은 원룸인지라 한 명은 침대 밑에 여분 이불을 깔고 자야했다. 항상 민규가 바닥에서 잠을 청했다. 집주인을 바닥으로 내몰수없다나. 이부자리를 대충 정리하고 나자 욕실에서 민규가 나왔다. 씻어요. 나 다 씻었어.

기분 좋은 정도로만 취기가 오르면 맨정신일 때 보다 잠에 들기 힘들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먹었던 것 같은데. 괜히 이불을 뒤척이자 민규도 아직 잠에 들지 않았는지 안 자? 하고 말을 걸어온다. 응, 잠이 안 오네. 한참동안 방 안에 침묵이 돌았다. 시계소리조차 나지 않아 서로의 숨소리만이 공기를 울렸다. 이러고 있으니까 그때 생각난다. 대답대신 민규 쪽으로 돌아누웠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지만 술을 핑계 삼았다. 신환회 때, 그 때도 이렇게 형 집에서 잤잖아.

2학년은 얼굴만이라도 비추고 가라는 과대에 등살에 밀려 갔던 신입생 환영회에서 민규를 만났다. 1년 만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식 다녀왔다던 순영에게서 이런 말은 듣지 못했다. 오랜만이라고 인사하는 민규를 바라보는 내 표정이 어땠는지 아직도 기억나지 않는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전부 착각이었다. 그동안 외면해온 감정들이 새어나와 술잔을 채웠다.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자 더 있다간 무슨 사고라도 칠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찬바람 쐬면 나아지겠지 싶어 주점을 나서는데 원우선배. 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가시게요?"

"어... 추운데, 들어가지 왜 나왔어..." "...택시 잡아드릴게요. 타고가세요." "괜찮아. 술도 깰 겸 걸어가려고." "그럼 데려다드릴게요."

분명 맨정신이었으면 거절할 제안이었지만 나는 술을 변명삼아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을 말 없이 걷기만 했다. 내가 한 발자국 앞에서, 민규는 한 발자국 뒤에서. 삼십분 남짓하여 자취방 앞에 도착했고 민규에게 인사를 건넸다. 너는 집 어디야? 택시 불러줄게, 타고가. 내 말에 망설이는 듯 하더니 대답을 내놓는다. ...○○동이요. ○○동이면 택시를 타도 한참 걸리는 거리였다. 근처에 모텔은 없어요? 하고 민규가 물었다. 있긴 했지만 걸어온 길을 그대로 다시 돌아가야했다. 추운 날씨에 또 다시 삼십분을 걸어가게 할 수는 없었기에 집 안으로 들였다.



 바닥에서 자겠다는 민규를 겨우 말려 침대 위로 올려보내고 바닥에 누웠다. 이상했다. 민규가, 전원우가 좋아했던 김민규가 내 침대 위에 누워있다는게. 도무지 잠이 올 것 같지를 않아 천장만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이불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선배, 주무세요? 짧게 응. 하고 대답하자 다시 말을 걸어왔다. 아까 많이 놀라셨죠. 순영이 형이 말하지 말라고... 대강 예상했지만 역시 순영의 계획이었다. 보나마나 숨기고 있다가 놀래켜주라고 했겠지.

"선배."

"선배는 무슨. 고등학교 졸업한 지가 언젠데. 형이라고 해. 말도 편하게하고." "...말은 천천히 놓을게요."

"편한대로해."

"그리고 혹시..."

불편하시면 이제 아는 척 안 할게요.

그때 형이랑 둘이서 밤새 오해 풀었잖아요. 기억나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직접적인 민규의 말에 당황해하다 겨우 입 밖으로 낸 건, 안 불편해. 이 한마디가 다였지 아마. 어떻게 말을 해야 바로 잡을 수 있을까 머리를 짜내는 도중 민규가 그럼 됐어요. 하고 말을 돌렸다. 그 뒤로는 고등학교 때 이야기를 한참 이어갔다. 그러다 해 뜰 쯤 잠들었지. 벌써 그게 2년전이네. 하고 말하는 민규의 표정은 그림자가 져 잘 보이지 않았다. 문득 술집에서 묘한 표정으로 말하던 민규의 모습이 떠올랐다. 형이랑은 하나도 안 맞는 게 없는 것 같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말이었지만 표정이 자꾸 걸렸다. 물어봐야 득 될 게 하나 없었지만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아까 그건 왜 그렇게 생각한거야? 뜬금없는 질문에 되물어온다. 뭘? 나랑은 맞는게 없다며.

아. 어제 고등학교 동창들 만났는데, 석민이 기억해요? 걔가 전에 형이랑 둘이 술 먹는거 봤나봐. 둘이 언제부터 그렇게 친했냐면서 둘이 성향이 완전 반대였는데 성격이 맞긴하냐고 그러더라? 근데 생각해보니까 진짜 반대이긴 한 것 같아서. 자질구레한 취향들도 그렇고.

그럼 왜 나만 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 이게 뭐라고 목소리가 떨리는지. 반쯤 장난처럼 던진 말인데 한참동안 답이 없는 민규에 뭔가 잘못되었다 싶어 말을 물렀다. 너무 오글거린다, 잠이나 자자. 상대방은 했는지도 기억 못할 말을 혼자 붙들고 있는 내 모습이 청승맞기 짝이 없었다. 괜히 코 끝이 시큰해지는게 금방 눈물이 날 것만 같아 민규를 등져 누웠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달라서 부딪힐 일이 없는 것 같다고 해야하나. 아무리 잘 맞는 사람들도 가끔씩은 어긋나잖아. 근데 우리는 그런게 없는 것 같아. 아, 그렇구나.하고 전부 넘어가니까. 그래서 선을 더 지키는 것 같기도 하고. 불편하지도 편하지도 않은 그 정도가 나한테는 적당한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이 전부 형같았으면 좋겠어. 아니다, ...그냥 형 같은 사람 한 명만 옆에 있으면 다른 사람은 없어도 괜찮을 것 같아.

마지막 한마디를 듣는 순간 다른 말들은 전부 잊혀졌다. 얼마나 다른지는 중요한게 아니었다.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하는 건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악의가 담긴 어떤 말보다 아팠다. 말은 저렇게 해도 결국 민규의 옆자리는 내가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이만하면 전부 털어내고 싶었다. 좋은 선배, 형으로 남고 싶다는 선택은 내 욕심이었다. 이 이상은 마음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몸을 일으켜 무릎을 앞으로 모아 앉았다. 민규는 천장을 보고 누운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민규야, 나는 네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너무 힘들어. 내 말에 느리게 눈꺼풀을 올린다. 네가 한마디를 뱉으면, 나는 수십번 고민해.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몸을 일으키고 두 눈을 맞춰왔다. 어떤 대답을 해야 네가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까, 이 대답은 너무 무거워보이나, 혹시라도 네가 눈치를 채면 어떻게 되는걸까, 이미 알고 있다면 어쩌지. 달빛에 비친 까만 눈동자는 폭풍우 치듯 흔들렸다. 형, 그게 무슨 소리에요. 예상치도 못한 말이었는지 목소리까지도 떨렸다. 미안, 끝까지 숨기고 싶었는데 이제 더는 못하겠어.

좋아해, 고등학교 때부터.

몰려오는 후련함에 눈물이 고였다. 고여있던 감정들이 흐르기 시작했다. 뿌옇게 흐려진 시야 너머로 일어선 민규가 보였다. 소매를 들어 눈물을 닦고 고개를 들어 눈을 맞췄다. 갑자기, 미안. 날 바라보는 곧은 시선에 다시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 입술을 꽉 물었다. 형. 떨리는 목소리로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힘들었죠.

민규의 품 안에서 한참을 울고 나서야 몰려들어오는 수치심에 눈물이 멈췄다. 민규의 품에서 벗어나 나란히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누구 하나 쉽게 입을 뗄 수 없었다. 늦었으니까 오늘은... 자고가. 먼저 입을 뗀 건 나였다. 중간의 공백이 뭘 의미하는지 민규도 알아챘을것이다. 오늘, 그 이후에는 관계가 어떻게 바뀔지 예상할 수 없었다. 내 말에도 민규는 우두커니 자리를 지켰다.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 민규에 침대 위로 몸을 틀려는데 손목을 붙잡아온다. 형은...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민규의 눈가가 촉촉했다.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내밀고 싶지 않았다. 주저하는 내 모습에 민규가 대신 입을 열었다. 형, 저는 형 잃고 싶지않아요. 인간관계에 크게 연연하지 않던 민규가 나와의 관계를 잃고 싶지 않아한다는 건 예상밖이었다. 우습게도 이걸로 최악은 면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근데, 그러면 형이 너무 힘들잖아... 주변 환경이 사람을 지치게 만들어서 그렇지 천성이 착한 아이였다. 차라리 사귀자고, 그렇게 말하면 안돼요?

"... 그럼 민규, 너는... 남자를 만날 수 있겠어?"

"..."



 "거봐, 그렇게 쉬운 얘기 아닌 거 알잖아. ...나는 이제 네 얼굴보는게 힘들어, 편해지고 싶어 민규야."

"...형이면 괜찮을 것 같아."

"너도 네 마음에 확신을 못 갖는데, 그래. 만약에 우리가, 만난다고 쳐."

나는 널 만난다는 것 자체로도 불안해할거야. 그뿐일까 네가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착각이었던 것 같다고 하면, 그때 나는 어떡해 민규야... 상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결국 고개를 떨궜다. 다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는데 커다란 손으로 뺨을 어루만져온다. 형, 한번만 믿어주면 안돼요? 흔들림 없는 새카만 눈동자에 마음이 흔들렸다. 진심이라고 믿고 싶어졌다. 사람을 만난다는 게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는데, 형이랑 친해지고 그런 생각이 처음으로 바뀌었어.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이라는게 있구나 하고. 불과 몇분 전만 해도 거세게 흔들리던 두 눈은 확신으로 가득했다. 그런 눈빛을 보고있자니 이제 어찌되든 괜찮을 것만 같았다. 혹여 비참한 끝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여도.

형, 저랑 만나요.

대답대신 민규의 입술 위로 내 입술을 포갰다. 첫키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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